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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국정 공백 속 책임 내던진 다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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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08 23:23:49 수정 : 2025-01-08 23: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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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석 보유 민주, 무소불위 힘 가져
덩치에 비해 책임감은 턱없이 부족
계엄·탄핵 정국에 경제 위기감 고조
李, 대권 꿈 이전에 현실 직시하기를

한국처럼 여소야대 국회 때문에 정국이 어지러운 나라로 프랑스가 있다. 지난해 7월 총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중도 연합이 참패하며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원내 1당이 된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도 하원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에 한참 못 미치는 182석에 불과하다. 143석의 극우 성향 국민연합(RN)과 연대해야만 야권이 주도하는 정부 구성이 가능하지만, 둘은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이다. 마크롱은 고심 끝에 중도파 인사한테 총리를 맡겨 소수당 정부를 꾸리는 길을 택했다. 프랑스 헌법상 총리 임명에는 의회 동의가 필요없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원내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약체일 수밖에 없다. 당장 예산안부터 장벽에 부딪혔다. 프랑스 의회는 대통령의 총리 임명에 관여할 수 없는 대신 총리 불신임권을 갖고 있다. 총선 후 마크롱이 임명한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결국 취임 2개월 만에 의회 불신임으로 쫓겨났다.

여기서 제1야당인 NFP의 태도가 눈길을 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NFP는 “우리가 원내 1당이니 총리를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30대 젊은 여성인 재정 전문가 루시 카스테트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마크롱은 NFP를 구성하는 일부 분파의 극좌 성향을 들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총리 후보 추천에 대한 NFP의 요구는 계속되는 중이다. ‘그게 총선 민심을 받드는 길’이란 논리를 펴며 마크롱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NFP에 비하면 더불어민주당은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국회 300석의 과반(151석 이상)을 훨씬 뛰어넘은 170석으로 모든 법률안과 예산안의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대통령 탄핵소추, 대통령이 거부한 법률안 재가결, 그리고 개헌 정도다.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 부결쯤은 일도 아니다. 민주당이 반대하는 인물은 총리가 될 수 없는 만큼 총리 임명의 열쇠 또한 민주당이 쥐고 있다.

지난해 4월 한덕수 총리가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을 때 민주당은 가만히 있었다. 정계 원로들을 비롯해 일각에서 “국회가 대통령에게 총리 후보를 추천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제안이 나왔으나 민주당은 귀를 닫았다. 되레 야권 인사들이 총리 후보 물망에 오르자 ‘야당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이란 취지의 날선 반응을 보였다. 다수당으로서 특권은 최대한 누리되 골치 아픈 국정 책임은 조금도 나누지 않겠다는 속내일 것이다. 여당이 죽어야 야당이 사는 ‘제로섬 게임’ 같은 한국 정치의 단면이라고 하겠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뒤 이재명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린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선거 후 약 8개월 동안 여의도 대통령이 한 일이라곤 오직 ‘용산 대통령’과의 살벌한 권력 투쟁뿐이다. 용산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냈다가 정치적 사망 판정을 받은 뒤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내란 잔당을 진압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지만 실은 대선 날짜를 최대한 앞당기려는 속셈임을 삼척동자도 안다. 현행법상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에 최장 180일이 보장된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부터 탄핵·파면 결정을 확신하는 모습이다.

‘여의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은 ‘대관식’이 열릴 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수개월의 국정 공백부터 먼저 걱정하길 바란다. 이 기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한국 경제가 지금 풍전등화인데 원내 과반 다수당으로서 나라의 안정적 운영을 뒷받침해야 할 민주당 인사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온통 ‘탄핵’ 아니면 ‘고발’뿐이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대신해 나랏일을 돌봐야 할 공직자들 손발을 묶어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이 대표는 수십년간 심혈을 기울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이 망하는 데에는 불과 몇 개월도 안 걸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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