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려고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지만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처벌받은 최말자(78)씨가 수사과정에 위법행위가 있었다며 청구한 재심이 열릴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56년 만의 미투’ 사건 당사자인 최씨가 당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잘못됐다며 청구한 재심을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 환송했다. 앞으로 부산고법에서 최씨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지고 이를 대법원이 다시 확정하면 최씨는 당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60여 년 만에 다시 받게 된다.
해당 사건은 1964년 5월6일 당시 18살이었던 최씨가 친구의 지인인 노모씨한테 성폭행당할 뻔하며 시작됐다. 자신보다 3살 많은 노씨의 성폭행 시도에 놀란 최씨는 노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자리를 벗어났지만 범죄 피해는 이어졌다. 노씨가 자신의 혀가 잘렸다며 행패를 부리고 협박한 것이다. 며칠 후 최씨는 영문도 모른 채 구속돼 ‘가해자’가 됐다.
최씨는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자신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강압적으로 수사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재판에서조차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재판부는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며 최씨가 유혹했다는 취지로 몰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결국 중상해죄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6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반면 노씨는 불구속 상태로 강간미수 혐의는 제외하고 특수주거침입죄와 협박죄로만 재판에 넘겨져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50여년이 지난 후 한국에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쏟아지자 최씨도 용기를 얻었다. 2020년 최씨는 여성인권운동단체인 부산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 최씨가 노씨의 혀를 깨문 것은 정당방위로 봐야 하고, 검찰 수사도 불법적이었다며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56년 만이었다. 하지만 다음해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재심을 기각했다. 재심 요건인 검사의 위법 행위를 입증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최씨의 항고에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원심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최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의 증거들, 즉 재심 대상 판결문, 당시의 신문 기사, 재소자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에 의해 알 수 있는 일련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사정들이 제시됐다”며 법원이 사실조사를 거쳐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파기환송 후 2심에서 재심 청구가 인용된다면 최씨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다툴 기회를 다시 얻게 된다. 60년 전 판결 그대로 중상해죄가 인정될지, 정당방위로 무죄에 해당할지 등은 실제 재심이 진행되면 본안 재판에서 다시 다투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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