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는 경남 하동과 진주다. 주인공 최서희가 태어나 자라고 또 생활한 곳이다. 소설에는 1925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경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할 때 상황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박 작가는 “고도(古都)로서 긍지 높았던 진주 사람들에게는 도청을 부산에 빼앗긴다는 것은 날벼락”이라고 묘사했다. 일제로서는 부산∼서울을 잇는 경부선 철도 개통 후 부산을 식민지 조선의 핵심 거점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부산은 6·25전쟁 기간 임시 수도 역할을 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1955년에 이미 인구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1963년 당시 군사정부는 부산을 전국 최초의 직할시(현 광역시)로 승격시켰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경축 대회에 참석할 만큼 커다란 이벤트였다. 애초 부산이 원한 건 서울과 같은 특별시 지위였으나, ‘서울은 수도지만 부산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에 부딪혀 직할시로 만족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지위를 굳힌 부산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 1995년에는 389만여명으로 400만명에 육박했다. 부산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김영삼(YS)정부 시절의 일이다. 부산 인구가 장차 500만명까지 늘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특별시 승격을 다시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YS가 1996년 해양수산부를 신설할 당시 그 청사를 부산에 두는 방안을 고려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95년 정점을 찍은 부산 인구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현재는 320만명 선으로 내려앉은 상태다. 전국적 현상인 저출생·고령화의 영향도 있겠으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 수도권으로 떠난 탓이 크다. 그제 한국고용정보원은 한 보고서에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20대 이하 청년 인구 비율이 가장 급속히 줄어든 곳이 부산”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부산을 우리나라 6개 광역시 중 유일한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과 지방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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