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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도 노벨문학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 총리를 지냈고 전후 ‘2차대전 회고록’을 쓴 윈스턴 처칠(1874∼1965)이 주인공이다. 해당 저술이 20세기 기록 문학의 위대한 성취란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다만 전 세계에 위대한 시인과 소설가가 즐비한데 굳이 정치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적절한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일각에선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2차대전 당시 스웨덴은 연합국 일원이 아닌 중립국이었다. 말이 ‘중립국’이지 전쟁 기간 나치 독일에 무기의 재료인 철광석을 수출하며 사실상 독일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주변국들이 독일의 침략을 받고 점령 통치를 겪은 점과도 대비됐다. 이에 스웨덴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그리고 영국 정부에 잘 보이려고 노벨문학상을 일종의 로비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그는 전후 펴낸 ‘2차대전 회고록’으로 1953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방인’과 ‘페스트’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꼭 2년 전인 195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카뮈보다 8살 연상이지만 한때 그와 친하게 지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6년이 지난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스웨덴 한림원에 편지를 보내 “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학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므로 노벨문학상으로 인해 위대성이 손상돼서는 안 된다”며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를 원치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호사가들은 “후배로 여기는 카뮈보다 늦게 수상자가 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라고 뒷담화를 했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왜 멀어졌을까. 한국에서 터진 6·25전쟁,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원인이었다.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르트르는 소련(현 러시아)의 입장 그대로 6·25전쟁을 ‘남한의 북침’으로 규정했다. 알제리 전쟁과 관련해선 “프랑스가 즉각 학살을 멈추고 알제리를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사회주의에 회의적이던 카뮈는 사르트르의 견해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전쟁이 두 대작가의 사이를 갈라놓은 셈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크림)반도를 강탈하고 이듬해인 2015년 스웨덴 한림원은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76)를 그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정해 발표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처칠과 마찬가지로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인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냥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불리는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논픽션이다. 2차대전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명의 목소리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책에 담았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상황이지만 2차대전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었고 국가는 여성들도 가차없이 징발해 군대로 보냈다. 아니면 남성 노동자들이 전선으로 떠나고 없는 군수품 공장에서 죽도록 일하도록 강요했다. 나이 어린 소녀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승리의 영광은 온통 남자들이 독차지했다. 군인이었든, 전시 근로자였든 여자들의 이름과 사연은 종전과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 알렉시예비치가 전하는 전쟁의 실상이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펴낸 소설가 한강.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일 한강을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0일 스웨덴 한림원에 의해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한강(53)이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사양했다. 부친이자 같은 소설가인 한승원(85) 작가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전 세계가 침통한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한강은 수상자로서 스웨덴 한림원 측과 가진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어떻게 축하하겠느냐’는 물음에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조용히 차를 마시며 축하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은 전쟁에 주목한다. 뭔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전쟁만큼 많은 영감을 주는 사건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내놓은 창작의 결과물은 전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다. 강렬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2024년의 비극이 언젠가 한강의 소설을 통해 인류를 각성시킬 날이 올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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