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람을 수십 명 해친 것으로 알려진 ‘차보 식인 사자’(Tsavo Man-Eaters)의 충치 속에 있던 털에서 사람과 기린, 얼룩말 등의 DNA가 확인됐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리판 말리 교수팀은 12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박물관에 있는 차보 사자 이빨에 있던 털을 분석, 사람과 기린, 얼룩말, 영양, 오릭스, 워터벅 등의 DNA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말리 교수는 “생명공학 발전으로 유전체학처럼 과거 정보를 얻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 연구는 과거 사자의 생태와 식습관뿐만 아니라 식민지화가 아프리카 지역의 생명과 토지에 미친 영향도 알려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1926년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돼 보관돼 온 케냐 차보 사자 2마리의 유골 중 손상된 충치에 압축돼 있던 털에서 DNA를 분리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 사자들은 식민지화 시대인 1898년 사살되기 전까지 케냐 차보강 인근 교량 건설 현장을 습격해 사람들을 잡아먹는 등 최소 28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기 없는 성체 사자였던 이들의 유골에서는 1990년 초 먹은 음식의 흔적을 조사하던 중 충치 부분에 수천 개의 털 조각이 압축돼 쌓여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후 여러 연구자가 현미경 분석 등 방법으로 다양하게 조사했으나 사자가 잡아먹은 동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최근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고대 표본 DNA 추출·분석 기술을 사자 이빨에서 나온 털을 분석하는 데 적용했다. 털에 남아 있는 핵 DNA를 통해 사자에게 잡아먹힌 동물들의 연령 등 정보를 탐색하고 핵 DNA보다 작지만, 보존이 잘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모계 혈통을 추적했다.
그 결과 차보 식인 사자의 이빨에 남아 있는 털은 사람과 기린, 얼룩말, 영양, 오릭스, 워터벅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잡아먹힌 기린은 케냐 남동부에 사는 마사이 기린 아종으로 밝혀졌으며, 영양은 이 사자들이 사살된 곳에서 수십㎞ 이상 떨어진 곳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 저자인 알리다 드 플라밍 박사는 “영양 서식지는 차보 사자가 사살된 곳에서 80㎞ 이상 떨어져 있다”며 “이는 차보 사자들이 알려진 것보다 더 멀리 이동해 사냥했거나 당시 차보 지역에도 영양이 살았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 사용된 방법이 다른 동물의 두개골과 이빨에서 먹이 동물의 DNA를 연구하거나 오래된 표본을 연구하는 데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말리 교수는 “이 방법론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전의 고대 육식동물의 부러진 이빨에서 나온 털에도 잠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며 “이 방법은 과거를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