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탈시설 반대할 권리 누구에게도 없어”…시의원들에게 편지 쓴 발달장애인들 [밀착취재]

, 밀착취재 , 이슈팀

입력 : 2024-04-26 06:00:00 수정 : 2024-04-25 18:23:1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서울시의회 상임위 상정
발달장애인 “자립할 권리와 부모의 자유로운 삶 상충하지 않아”
부모회는 폐지조례안 통과 촉구 집회
“서울시의회 의원님들, 많이 바쁘시죠? 일도 많고 피곤하시죠? 그래도 우리 얘기 좀 들어주세요.”

 

박초현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을 올려다봤다. 박 활동가는 7살부터 지금까지 장애인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시설 밖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이 입법예고된 이후 걱정이 많다. 시설 밖 생활을 꿈꾸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이 가로막힐까 봐 그렇다. 박 활동가는 의원회관을 향해 “조례를 지켜주시고 탈시설해서 잘사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라고 외쳤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선 보건복지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탈시설 조례안 폐지조례안은 이날 회의의 3번째 안건으로 다뤄졌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모임 서울피플퍼스트는 전날부터 의원회관 인근에서 밤샘 공동행동을 이어갔다. 이들은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며 조례폐지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한편 같은 시간 시의회 앞에선 폐지조례안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김현아 활동가가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을 숙고해 달라며 발언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피플퍼스트 소속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은 의원회관 앞 덕수궁 돌담길에서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쓴 편지를 차례로 읽었다. 이들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을 향해 손팻말을 들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발달장애인들이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는 걸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들의 입담에 웃음을 짓는 행인도 있었다.

 

김현아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국민의힘 윤영희 시의원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탈시설 조례가 폐지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 활동가에게 시설에서 살았던 기억의 대부분은 꾸중의 연속이었다. 그는 “외출할 때면 허락을 받아야 하고 샤워를 하고도 잘했는지 확인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탈시설 4년 차로 지원주택에 살고 있다는 박 활동가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함께 노래방에 가서 노는 것이 제일 재밌다”며 “시설 밖에서 살면서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다”며 웃으며 말했다.

25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서 박초현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손팻말을 들고 행인들에게 탈시설 조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있다.

보건복지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강석주 시의원에게 편지를 쓴 박경인 활동가는 “시설 입소는 부모의 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탈시설을 두고 부모의 권리와 자녀의 권리가 충돌하는 문제처럼 말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다”며 “우리가 자립하면 부모가 돌봄의 짐을 혼자서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립할 권리와 부모의 자유로운 삶을 함께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반대를 주장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들은 오후 1시가 되자 의원회관 앞으로 자리를 옮겨 편지 낭독을 이어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의원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 30여명은 의원회관 입구에서 펼침막을 들고 편지를 읽었다. 이날 결국 소속 의원 가운데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서울피플퍼스트 관계자 30여명이 펼침막을 들고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이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맞섰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회원 100여명은 오전 10시부터 시의회 앞에 모두 소복을 입고 모였다. 이는 죽기를 결심하고 조례 폐지를 촉구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중증발달장애인 아들을 시설로 보냈다는 민경애씨는 “시설을 없애지 말라는 게 우리 주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우리 아들은 자폐성 발달장애인으로 의사 표현도 어렵고 자립이 불가하다”며 “그러나 시설에 들어간 뒤 우리 아들은 행복하게 살고 나도 행복하다”고 했다. 이어 “시설에 들어가기까지 10년을 기다렸는데 지금보다 시설이 줄어들면 부모들은 어쩌라는 거냐”고 덧붙였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탈시설 조례 폐지조례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시의회는 조례를 폐지하라는 내용의 주민조례청구를 수리했다. 서울시 주민 조례 발안에 관한 조례는 18세 이상 서울시민 2만5000명 이상이 청구권자로서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탈시설 조례는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 정착을 위한 지원 주택과 자립 생활 주택, 활동 지원 서비스와 소득 보장을 위한 공공 일자리 제공을 규정한다. 시설을 없앤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조례에 포함돼 있지 않다.

 

탈시설 조례폐지안은 다음달 3일까지인 제323회 임시회 회기 중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