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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유럽 브랜드 밀어냈다”…밀라노 ‘보테가 삼성’ 가보니 [이동수는 이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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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21 09:08:46 수정 : 2024-04-21 15: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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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중’은 핑계고, 기자가 직접 체험한 모든 것을 씁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가구 박람회 ‘밀라노 디자인위크 2024’ 개막 이튿날인 지난 17일(현지시간), 실내 전시장 대신 현지 가전·가구 유통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전의 발상지라 불리는 유럽에서 현장 분위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유럽 대표 가전 유통 업체 ‘미디어월드’의 이탈리아 밀라노 체르토사 지점 전경. 삼성전자 제공

이날 찾은 곳은 유럽 대표 가전 유통 업체인 ‘미디어월드’의 체르토사 지점, 명품 빌트인 주방 가구 전문 브랜드인 ‘스카볼리니’, ‘루베’ 매장 등이다. 미디어월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하이마트, 스카볼리니·루베는 한샘·일룸 등에 해당한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삼성전자, LG전자, 중국의 하이얼 등 비유럽 브랜드의 약진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보수적인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방문한 체르토사점만 해도 매장 입점 브랜드 중 삼성전자의 전시 공간이 가장 넓었다.

 

미디어월드 체르토사 매장 내에 있는 ‘보테가 삼성’ 모습.    밀라노=이동수 기자

◆‘헤리티지 브랜드’의 견고한 벽

 

세계 최대 가전 업체 중 하나인 삼성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게 대수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현지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면 삼성이 유럽에 일군 유통망이 새삼 달리 보인다. 비유럽 브랜드에게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의 진입장벽은 꽤나 높기 때문이다.

 

빌트인은 실내를 꾸밀 때 벽면에 가구를 짜면서 가전제품 등을 그 안에 집어넣어 돌출되지 않게끔 한 형태를 말한다. 유럽은 빌트인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지난해 전 세계 빌트인 시장의 42%(212억달러)를 유럽이 차지했다.

 

유럽에서 빌트인 가전 판매는 주로 주방 가구 업체와의 협업으로 이뤄진다. 가구 업체가 고객이 선호하는 키친테리어(주방+인테리어)에 알맞은 주방 가전을 추천하며 일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구 업체는 가전 기업에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한다. 빌트인 가전은 한번 설치하면 교체가 어려우므로 고장이 나면 안 되고,  크기나 마감이 주방 가구와 딱 맞아 떨어져야 하므로 업계 규격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해 웬만한 업체는 진입이 어렵다.

 

현지의 가전 구매 문화도 비유럽 브랜드엔 불리하게 작용한다. 유럽 청년층은 처음 빌트인 가전을 살 때 부모 등 선대의 오랜 사용경험으로 품질이 확인된 브랜드를 추천받는다. 이렇다 보니 보쉬 지멘스, 일렉트로룩스, 밀레 등 유럽에서 오랜 시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일종의 유산처럼 자리 잡은 현지 ‘헤리티지 브랜드’들이 강세를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가구 박람회 ‘밀라노 디자인위크 2024’ 기간 중 밀라노 시내 빌딩에 삼성전자의 ‘갤럭시 AI’를 소개하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다. 밀라노=이동수 기자

◆삼성, 유럽 브랜드와 어깨 나란히

 

삼성전자는 이탈리아에서 승부수를 걸었다.

 

이탈리아는 유럽 내에서도 빌트인 가전 비중이 전체 가전 시장의 절반이 넘는 중요한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가전 전체 시장 규모는 41억9000만달러로, 이중 빌트인 가전 규모는 52%인 21억6000만달러 수준이다. 이탈리아 내 빌트인 가전 비중은 2019년 48%에서 2022년 51%, 지난해 52%로 꾸준히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탈리아에서 2011년부터 브랜드인지도 1위를 이어오고 있다. 2004년부턴 20년 연속 TV 1위를 수성 중이고 2022년부턴 프리스탠딩과 빌트인을 포함한 전체 가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현지 가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패션·디자인 중심지인 밀라노는 삼성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05년 4월7일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주요 사장단을 집결시켜 “삼성의 디자인은 아직 1.5류”라며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을 세운 곳이라서다.

 

삼성전자는 이 선대회장의 ‘밀라노 선언’에 맞춰 현지 패션·리빙 브랜드와의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디젤, 셀레티, 피오루치 등 유명 브랜드와 스마트폰 액세서리를 선보였고, 지난해 가전업체 최초로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인 토일렛페이퍼와 협업해 한정판 디자인의 비스포크 냉장고를 판매했다.

 

삼성전자 모델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토일렛페이퍼 홈’에서 토일렛페이퍼의 가구·소품들과 함께 한정판 디자인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밀라노 시내 전광판에 삼성전자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피오루치가 협업한 스마트폰 케이스가 소개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밀라노=이동수 기자

◆‘보테가 삼성’…현지화 승부수

 

다시 체르토사점으로 돌아와 보자.

 

매장에선 ‘보테가 삼성’을 만날 수 있었다. 보테가(bottéga)의 뜻은 상점, 작업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강렬한 브랜드 이미지와는 달리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상점’이라는 소박한 뜻이다.

 

가전 유통 매장에 브랜드별로 공간이 나뉜 것은 흔치 않다. 체르토사점은 미디어월드를 소유한 독일계 전자유통업체인 MSH의 ‘라이팅 하우스’ 프로젝트를 적용한 첫 매장이다. 라이팅 하우스는 매장 내 가전·전자 브랜드별로 스토어를 꾸려 차별화된 제품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보테가 삼성은 유럽의 가정집을 모토로 가전·TV·모바일 등 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빌트인 가전 중 가장 눈에 띈 건 냉장고와 오븐이다. 두 품목 모두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유럽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 석혜미 프로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미디어월드 체르토사’ 매장 내 전시된 삼성전자의 유럽 특화 오븐 라인업을 소개하고 있다. 밀라노=이동수 기자

‘빌트인 와이드 BMF(상냉장∙하냉동) 냉장고’는 삼성전자의 빌트인 냉장고 라인업 중 최초의 와이드 모델이다.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 석혜미 프로는 “유럽 가정엔 대형 냉장고가 있는 곳이 거의 없는데, 최근 대량의 식품을 오래 보관하는 냉장고 수요가 커지면서 와이드 BMF를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와이드 BMF의 내부 용량은 기존 모델 대비 91리터(ℓ) 더 커진 389ℓ다.

 

유럽 주방의 ‘허브’(중심)로 불리는 오븐도 다양한 제품이 전시됐다. 특히 내부 공간을 둘로 나눠 각기 다른 온도로 요리할 수 있는 ‘듀얼 쿡 플렉스’ 오븐이 눈길을 끌었다. 오븐 도어도 상부만 따로 열 수 있게끔 고안돼 유럽 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석 프로는 “삼성전자가 빌트인 시장에 안착하는 데 가장 많이 도와준 제품이 바로 듀얼 쿡 플렉스 오븐”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5대 주방 가구 유통 업체인 스카볼리니(왼쪽 사진)와 루베 매장 전경. 둘 모두 밀라노 내 가구거리 격인 ‘코르소 셈피오네’에 위치해 있다.  밀라노=이동수 기자 

◆주방 쇼룸서 만난 삼성 가전들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을 나와 스카볼리니, 루베 매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매장들은 밀라노의 ‘코르소 셈피오네’에 줄지어 있었다. 코르소 셈피오네는 ‘셈피오네 길’이라는 뜻으로, 셈피오네는 밀라노에서 가장 큰 녹지 공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논현 가구거리 같은 곳이다.

 

스카볼리니와 루베는 이탈리아에서 베네타 쿠치네, 스토사, 아레도3과 함께 현지 5대  주방 가구 유통 업체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5대 유통과 모두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매장 내 쇼룸 곳곳에선 삼성전자의 오븐,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석 프로에 따르면 유럽 가구 유통 업체가 고객에게 주방 디자인과 함께 권유하는 4대 주방 가전이 바로 냉장고, 오븐, 쿡탑, 식기세척기다. 주방 쇼룸에 삼성전자의 냉장고·오븐이 전시되면 곧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다.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 석혜미 프로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스카볼리니 매장에서 주방 쇼룸에 전시된 삼성전자의 ‘빌트인 와이드 BMF(상냉장∙하냉동) 냉장고’를 소개하고 있다. 밀라노=이동수 기자

삼성전자는 4대 패키지에 발맞춰 이번 디자인위크 기간 중 열린 주방 가전·가구 전시회 ‘유로쿠치나 2024’에서 빌트인 식기세척기 신제품 ‘키친핏 슬라이딩 도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신제품은 하단의 걸레받이를 자르지 않고 주방 가구에 꼭 맞게 설치하면서도 도어를 손쉽게 열 수 있다. 에너지효율에 민감한 유럽 소비자를 겨냥해 에너지효율 A, B 등급도 획득했다. 키친핏 슬라이딩 도어는 올해 3분기 출시된다.


밀라노=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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