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거나 비가 내리는 날, 베란다 대신 거실이나 방 안에서 빨래를 말리다 보면 어김없이 불청객이 찾아온다. 세제로 깨끗이 빨아 말렸는데도 옷깃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꿉꿉한 냄새다. 흔히 ‘쉰내’나 ‘찌린내’로 부르는 이 악취는 단순히 옷이 잘 안 말라서 생기는 습기 냄새가 아니다.
냄새의 진짜 원인은 섬유 구석구석에 기생하는 세균이다. 2012년 일본 가오(Kao) 주식회사 세탁과학연구소와 도쿄농공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실내 건조 시 빨래에서 나는 특유의 걸레 냄새를 유발하는 핵심 주범은 ‘모락셀라 오슬로엔시스’라는 세균으로 확인됐다.
이 모락셀라균은 사람의 피부나 가정 내 환경에 흔히 존재하는 상재균의 일종이다. 세탁 후에도 섬유에 남아있는 미량의 단백질과 지방 오염물, 피지 성분을 먹고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균이 배출하는 유기 화합물인 ‘4-메틸-3-헥센산’이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기는 것이다.
건조 과정이 늦어져 섬유가 젖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균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보통 빨래가 5시간 이상 젖은 상태로 유지되면 모락셀라균의 증식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많은 이들이 냄새를 가리기 위해 세탁 시 섬유유연제를 평소보다 많이 넣곤 한다. 하지만 이는 냄새를 잡기는커녕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섬유유연제의 주요 성분인 양이온 계면활성제는 섬유 표면에 코팅막을 형성해 감촉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러나 실내 건조 환경에서 이 코팅막은 수분의 증발을 막는 방해막으로 작용한다. 건조 시간이 길어지면서 세균이 번식하기 딱 좋은 습한 환경을 오래 유지하게 만드는 셈이다. 더욱이 유연제 잔여물은 모락셀라균의 영양분으로 작용해 균의 개체수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악취가 나는 옷을 그대로 입는 것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모락셀라균 자체는 건강한 성인에게 치명적인 병원균은 아니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유소아나 노약자, 기저질환자의 경우 호흡기 착생을 통해 미세한 기침이나 감염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청 등의 자료에 따르면 젖은 빨래를 실내에 오래 펼쳐둘 경우 실내 습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이는 모락셀라균뿐만 아니라 집먼지진드기와 곰팡이 포자의 번식을 촉진한다. 곰팡이 포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다 호흡기로 들어갈 경우 자극을 주어 알레르기 비염이나 아토피 피부염, 과민성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내 건조 냄새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세탁의 시작부터 건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루틴을 적용해야 한다.
첫째, 마지막 헹굼 단계에서 식초나 구연산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모락셀라균을 비롯한 세균은 산성 환경에서 증식이 억제된다. 섬유유연제 대신 식초나 구연산 1~2스푼을 넣으면 알칼리성 세제 성분을 중화하고 세균 번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식초의 시큼한 향은 빨래가 마르면서 공기 중으로 날아가므로 옷에 남지 않는다.
둘째, 60도 이상 온수 세탁과 산소계 표백제(과탄산소다)의 조합이다. 모락셀라균은 열에 매우 약하다. 일본 세탁과학연구소 실험 결과, 60도 이상의 열수에서 대부분 사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건이나 면 소재 속옷처럼 열에 강한 의류는 60도 이상의 온수로 세탁하거나 과탄산소다를 따뜻한 물에 녹여 애벌빨래를 해주면 냄새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셋째, 빨래 건조대 배치 방식의 변화다. 건조대에 옷을 걸 때는 통풍이 핵심이다. 옷과 옷 사이 간격을 최소 5~7cm 이상 띄워야 한다. 긴 옷은 양끝에, 짧은 옷은 가운데에 거는 일명 ‘아치형(∩자형) 배치’를 하면 건조대 아래쪽과 가운데로 공기 흐름이 유입되면서 건조 속도가 약 30분 이상 단축된다.
마지막으로, 건조대 하단에 선풍기나 제습기 배치다. 빨래 밑에서 위로 바람을 불어넣어주면 젖은 섬유 주변의 습한 공기층이 빠르게 밀려나면서 건조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신문지나 숯을 건조대 아래 바닥에 깔아두는 것도 주변 습도를 흡수하는 데 소소한 도움을 준다. 더불어 세탁 후 세탁기 문과 세제 투입구를 항상 열어두어 내부 습기를 말리고, 주기적으로 세탁조를 청소하는 기초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매일 사용하는 수건과 옷에서 나는 찌든 냄새는 세제의 양을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정확한 과학적 원인을 이해하고 세탁 습관을 조금만 바꾸면, 눅눅한 날씨에도 햇볕에 말린 듯 보송보송하고 쾌적한 옷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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