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부 시절인 1968년 1월23일 미국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號)가 북한 강원도 원산 앞 공해상에서 북한 초계정의 공격을 받았다. 정보 수집이 주된 임무인 푸에블로호는 무장이 빈약했다. 푸에블로호는 승조원 83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북측에 나포되고 말았다. 국제법상 영해 바깥 공해에서는 군함과 민간 선박 모두 항행의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도 북한은 “우리 영해를 침범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은 즉각 한반도 주변에 전략자산을 증강 배치했다. 남북한 모두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다만 미 행정부는 북측에 붙잡힌 승조원 82명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래서 북한 대표단과 30차례 넘는 비밀 회담을 벌였다. 결국 나포 후 325일 만인 1968년 12월23일 승조원 82명 그리고 사망자 1명의 유해가 판문점을 통해 미군에 인계됐다. 다만 북한은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도 푸에블로호 선체만은 돌려주지 않았다. 이 비운의 배는 오늘날 평양 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보통강에 전시돼 북한 체제 선전과 ‘미 제국주의’ 비난에 활용되고 있다.
2023년 푸에블로호 옛 승조원과 사망자 유족 등 100여명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납치와 고문 피해를 입었다”며 거액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비슷한 시기 미 연방의회 하원에선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와 승조원 억류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푸에블로호 선체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도 발의됐다. 이에 자극을 받은 걸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기사를 통해 “만약 제2의 푸에블로호가 우리 영해에 또 다시 들어온다면 (…) 도발자, 침략자의 땅덩어리를 통째로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협박인 셈이다.
2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북한 정권이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에게 4억달러(약 5300억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미 법원 판결문이 최근 북한 측에 전달됐다. 미 국무부가 뉴욕에 있는 주(駐)유엔 북한 대표부에 판결 서류를 건넸다고 한다. VOA는 “북한이 배상금을 지불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피해자들이 실질적 구제를 받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판결을 계기로 전 세계 금융기관 등에 예치된 북한 동결 자산을 추적해 압류한 뒤 배상금으로 회수하는 강제집행 절차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비롯해 북한의 도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한국인데, 정작 북한을 겨냥한 적개심과 응징 의지는 우리보다 미국이 더 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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