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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지운 공산주의-이상헌의 사상적 여정과 인간해방의 길] ① 조국을 되찾으려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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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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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해방의 열망이 공산주의로 향하다

21세기 전반을 살아가는 지금 돌아보면, 20세기는 공산주의가 인류를 가장 강하게 매혹한 시대였다. 공산주의는 착취와 불평등을 없애고 누구나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이상사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와 당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북한에서는 수령 한 사람을 절대자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상화하기에 이르렀다.

 

의사이자 통일사상을 체계화한 사상가 이상헌(李相憲·1914~1997)은 이러한 실패의 더 깊은 뿌리를 하나님을 부정한 철학적 출발점에서 찾았다. 그에게 하나님은 종교적 믿음의 대상에 머물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을 존재하게 한 근원이자 사랑과 양심의 출발점이며, 국가와 당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근거였다. 공산주의는 인간해방을 약속했지만, 정작 인간을 물질과 계급으로 설명하면서 그 근원을 놓쳤다고 본 것이다. 하나님을 지운 사상이 끝내 인간의 자유와 존엄까지 빼앗았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었다.

 

결국 1989년 동유럽 공산정권이 잇따라 무너지고,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됐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베트남·라오스·북한·쿠바 등에서는 여전히 공산주의 계열의 일당 지배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그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에 이른다. 자유민주사회에서도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부유층 전체를 적으로 돌리거나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에서 해법을 찾아서도 안 된다. 한국 역시 공익과 개혁을 명분으로 국가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인간해방을 약속한 사상이 인간을 억압한 역사를 되짚는 것은, 어떤 이념과 권력도 인간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유와 평등을 함께 지키면서 불평등과 소외를 해결할 길을 찾기 위해, 지금 이 시점에 공산주의의 약속과 실패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지운 공산주의’는 이상헌의 강연과 저술, 논문, 증언 등을 토대로 한 연재물이다. 이 연재는 과거의 실패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고 사랑과 책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사회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등장해 인류를 매혹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로 변했는지를 되짚어본다. 아울러 이상헌이 공산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통일사상을 살펴보고, 하나님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 책임과 사랑을 회복해 나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되찾는 것은 인간을 권력과 이익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사랑과 양심에 따라 사람과 자연을 대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질서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이상헌 원장.
이상헌 원장.

◼ 이상헌은 누구인가

 

이상헌은 의사이자,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통일사상을 체계화한 사상가다.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나 함흥고보 재학 중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참여했으며, 좌익운동으로 함흥고보와 휘문고보에서 두 차례 퇴학당했다. 이후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3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한때 민족해방을 이룰 사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 철학적 토대인 유물론이 민족애와 인류애, 사랑과 양심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회의를 품었다. 기독교와 철학을 탐구하던 중 1956년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을 접했으며, 이후 통일사상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아 이를 인간과 세계, 역사와 사회를 아우르는 통일사상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통일사상을 통해 공산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하나님주의와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 저서로는 『새 공산주의 비판』, 『김일성 주체사상 비판』, 『공산주의의 종언』, 『통일사상요강』 등이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항일정신

 

일제강점기 한 소년이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학교에서는 두 차례나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항일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과 싸우다 스물대여섯 살이 되면 고문으로 죽을 것이라고 각오했다.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고문을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스스로 몸을 몽둥이로 때려보기까지 했다. 그가 훗날 ‘공산주의 비판’과 ‘통일사상’의 체계화에 평생을 바친 이상헌 초대 통일사상연구원장이다.

 

이상헌은 공산주의 이념이 민족해방의 길이라고 믿고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공산주의를 비판했다는 사실만 알고 이 시절을 지나치면 그의 사상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한쪽을 놓치게 된다. 그는 밖에서 공산주의를 바라본 사람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이론에 심취해 공부하고 행동하다가 스스로 의문을 품고 돌아선 사람이었다.

 

1914년 함경남도 정평군 신상면 화동리에서 유학자 이수영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상헌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강한 민족교육을 받았다. 유학자였던 아버지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일본의 침략과 국권 상실의 비애를 들려주었다. 아버지의 분노와 통한은 그대로 아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이상헌은 자신의 표현대로 유년 시절부터 ‘반일사상으로 굳어진’ 소년으로 성장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이듬해 봄에는 전국으로 번졌다. 당시 함흥고등보통학교 1학년이던 이상헌도 전국으로 확산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했다. 학생 비밀조직에 들어가 격문을 뿌리고 시위에 참여했다. 말을 타고 칼을 찬 일본 경찰이 거리를 순찰했지만, 학생들의 저항을 쉽게 막지는 못했다.

 

당시 학생운동의 배후에는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그 차이를 명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두 세력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조선의 해방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상헌의 눈에는 민족주의자보다 공산주의자들이 훨씬 강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적 색채까지 띠고 있었고, 때로는 민족주의보다 더 애국적인 사상처럼 느껴졌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것과 공산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서로 다른 길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공산주의 조직의 영향권에 젖어들었다. 관련 서적을 열심히 탐독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과 불평등을 배웠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 가난한 노동자가 고통받는 현실을 설명하는 공산주의 이론은 정의감에 불타던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가난, 차별과 억압이 엄존하던 시대였다. 공산주의는 그에게 민족을 해방하고, 억눌린 사람을 구하며, 불의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약속으로 다가왔다.

 

공산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사상이 아니었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이 확대되는 한편, 빈부격차와 경쟁이 심해지고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흐름 속에서 싹텄다.

 

18세기 제네바 출신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사유재산과 문명이 인간의 본래적 자유와 평등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노동자의 빈곤과 착취를 해결하려는 여러 사회주의 사상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와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이 혼용되기도 하지만, 세 용어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좌파는 평등과 사회개혁을 중시하는 넓은 정치적 범주다. 사회주의는 그 가운데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나 통제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려는 주요 사상이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가운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계급의 철폐를 지향하는 혁명적 갈래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대체로 좌파에 속하지만, 좌파나 사회주의자가 모두 공산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삼는 국가와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는 구별해야 한다. 중국·베트남·라오스·쿠바·북한은 공산당이나 노동당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다. 반면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높은 조세와 복지를 결합한 나라들이다. 복지정책을 시행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다만 체제를 평가할 때는 평등이나 복지라는 목표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의 독점을 막는지도 살펴야 한다.

 

흔히 ‘공산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르크스는 빈부격차와 노동자 착취에 대한 비판을 공산주의의 사상적 기반인 유물론(唯物論)과 계급투쟁의 역사관에 결합해 근대 공산주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인간의 의식과 사회제도가 물질적 생산관계의 영향을 받으며, 역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주의를 거쳐 계급과 국가가 사라진 공산사회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한 청년들에게 공산주의는 경제이론이나 이상(理想)을 넘어 세계와 역사, 혁명의 길을 하나로 설명하는 거대한 사상체계였다.

1926년 광주에서 조직된 학생 비밀결사 독서회 ‘성진회’ 결성 기념사진. 성진회를 비롯한 학생들의 항일조직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밑바탕이 됐다. 이상헌도 당시 함흥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항일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출처: 국가보훈부
1926년 광주에서 조직된 학생 비밀결사 독서회 ‘성진회’ 결성 기념사진. 성진회를 비롯한 학생들의 항일조직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밑바탕이 됐다. 이상헌도 당시 함흥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항일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출처: 국가보훈부

민족해방의 길에서 공산주의를 만나다

 

이상헌은 갈수록 투쟁적으로 변했다. 함흥고보에서 퇴학당한 그는 이듬해 서울 원서동의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좌익운동에 참여하다 다시 퇴학당했다. 여러 차례 체포돼 유치장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 명단에도 이름이 올랐다. 서울에서 하숙할 때는 형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예고도 없이 방으로 들이닥쳐 책상과 장롱을 뒤졌다. 그가 없는 사이에도 불온서적을 찾는다며 방을 수색했다.

 

휘문고보에서도 퇴학당한 그는 서울 혜화동의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옮겨 학업을 이어갔다. 세 번째로 들어간 보성고는 다른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에게도 문을 열어준 민족주의적 전통의 학교였다. 이상헌은 그곳에서도 항일운동으로 체포돼 몇 달 동안 유치장 생활을 했지만, 마침내 학교는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3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이상헌은 당시 자신을 움직인 힘이 민족애와 인류애였다고 회고했다.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는다”, “인류를 위해 죽는다”는 말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굶주림도 견디고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생명보다 조국의 독립과 고통받는 사람의 해방을 앞세웠다. 그런 그에게 희생은 고통만을 뜻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오히려 뜨거운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가 받아들인 공산주의는 인간의 정신보다 물질을 먼저 보았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에 따르면, 물질은 인간의 의식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며, 정신과 의식은 물질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도 물질적 토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노동하며, 어떤 생산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인간의 의식과 사회제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지녔다. 굶주림과 착취를 개인의 게으름이나 운명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구조의 문제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가난한 사람에게 참고 견디라고 말하기보다 가난을 낳은 소유관계와 계급구조를 바꾸라고 했다. 고통받는 민중에게 유물론은 철학적 사조를 넘어 현실을 분석하고 세상을 변혁하는 날카로운 무기였다.

 

이런 열망은 해방 뒤 국민 여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46년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식민지 시기의 경제 질서를 바꾸고 가난과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기대가 그 선택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①조국을 되찾으려던 청년

②유물론이 놓친 사랑

③공산주의의 유혹, 종교의 빈틈

④마르크스가 찾던 인간

⑤인간소외의 뿌리

⑥투쟁을 넘어 사랑으로

⑦물질 너머의 근원을 묻다

⑧붕괴 전에 울린 조종(弔鐘)

⑨실패를 낳은 이론

⑩주체사상, 자주가 복종이 되다

⑪민주주의를 이용한 공산주의

⑫실패하고도 고개를 들다

⑬체제는 무너져도 원한은 남는다

⑭폭력의 혁명, 사랑의 혁명

⑮사랑으로 세우는 새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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