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피스로드재단이 북극항로를 주제로 한 웨비나를 열고 활동에 다시 시동을 건다. 한동안 대외 활동을 줄이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피스로드 구상을 알려온 재단이 재개의 첫 의제로 선택한 것은 북극항로다. 재단은 한국의 조선·해운 역량을 바탕으로 이 바닷길을 새로운 유라시아 협력의 길로 만들어갈 가능성에 주목했다.
피스로드재단과 러시아 천주평화연합(UPF)은 ‘한·러 피스로드 웨비나’ 첫 회 영상을 30일 오후 6시 피스로드매거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다. ‘북극항로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 새로운 유라시아 협력의 기회’를 주제로 김정훈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소장과 한종만 배재대 명예교수가 대담한다. 러시아어 자막과 더빙을 입힌 영상은 10월 1일 오후 5시(현지시간) 러시아 UPF 온라인 플랫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재단이 다시 꺼내 든 ‘길’의 화두는 국제평화고속도로에서 북극의 바닷길로 확장됐다. 피스로드재단은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제안한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됐다. 국가 간 끊어진 교통망을 연결하자는 구상으로, 한일해저터널과 베링해협 연결 사업에 관한 연구·홍보 활동을 이어왔다. 재단의 연원은 두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된 피스킹인터내셔널(PKI)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재단은 블로그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블로그의 ‘바다와 길 이야기’, ‘길을 여는 사람’, ‘협력하는 세계’ 등의 코너에서는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과 관련 인물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이번 웨비나는 그동안 온라인에서 이어온 소통을 한·러 전문가의 대화로 넓히는 첫걸음이다.
먼저 김정훈 소장은 “북극항로는 새로운 길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길”이라며 항로가 언제 열리느냐보다 어떤 조건에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운송로가 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빙과 기후, 항행 안전, 보험료와 운송비, 환경규범은 물론 북극권 원주민과 지역사회의 이해관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한국의 조선·해운·항만 기술과 극지과학 연구를 연결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해빙·기상 정보를 선박의 항행 계획에 활용하고 물류 데이터와 결합해 운송 비용과 효율을 분석하려면 자연과학자와 물류 전문가, 국제법·지역연구자가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축적된 연구를 분야와 세대에 걸쳐 잇는 일을 ‘북극연구의 재연결’이라고 표현했다.
한·러 협력에서는 학술·과학기술 교류를 출발점으로 꼽았다. 러시아 북극권의 지역정부와 연구기관, 산업계와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연구자 사이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취지다. 김 소장은 “북극항로 시대의 한·러 협력은 물류의 인프라, 지식의 인프라, 신뢰의 인프라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라며 한국의 국익과 국제규범에 부합하는 협력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종만 명예교수는 북극항로의 물동량과 경쟁 구도를 짚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 북부해 항로(NSR)의 화물 운송량은 2024년 약 3800만t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2025년에는 약 3702만t으로 줄었다. 반면 항로를 통과하는 화물과 컨테이너 운항은 늘고 있다. 한 교수는 특히 2024년 환적 화물의 99.2%가 중국을 오가는 물량이었다며 한국도 북극항로의 물류 구조와 참여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강점으로는 선박 건조 기술을 들었다. 한 교수는 한국이 러시아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의 쇄빙 LNG선 15척을 건조한 경험을 거론하며 내빙·쇄빙 선박, 극지용 방한 기술과 자율운항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추진 선박 기술 확보도 장기 과제로 제시했다.
한 교수는 지난 8월 22일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숫자보다 상징이 큰 항해”로 평가했다. 자동차 부품과 화장품 등 실제 수출화물을 실어 정기 컨테이너 노선의 가능성을 시험했다는 점에서다. 다만 제재 위험과 보험·운항 비용 등 상업 운항을 가로막는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극항로를 러시아 구간에 한정하지 않고 유럽·미주·아시아를 북쪽에서 잇는 ‘유람시아(Euramsia)’ 구상도 소개했다. 동해에서 베링해협과 알래스카를 거쳐 북미까지 시야를 넓히자는 제안으로, 베링해협을 국가 간 연결의 거점으로 보는 피스로드재단의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한 교수는 부산·울산·경남을 북극항로의 동쪽 관문으로 키우고 항만, 조선, 선박 수리·개조와 철도 물류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극권 개발에는 생태계 보호와 지속가능성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단은 첫 회 영상을 국내 피스로드 포럼 회원과 자문위원 등에게 공유하고, 러시아에서는 UPF 네트워크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다음 회기에는 러시아 측 전문가를 초청해 논의를 이어간다. 육로를 이으며 평화와 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재단이 이번에는 북극의 바닷길에서 한국의 미래 역할을 찾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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