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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부터 트라우마 극복까지 동행”…밤낮·휴일 없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 [경찰서 사람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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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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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심리적 보호’ 전담제 핵심
성폭력 피해 자녀 생계 지원서
참사 유가족 버팀목 역할까지
“안부 한마디면 피로가 눈 녹듯”
사건 현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과 집요한 수사로 범인을 쫓고, 시민의 일상을 지켜낸 ‘경찰서 사람들’입니다. 사건 뒤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할 때까지 피해자와 동행하는 게 제 일이에요.”

 

2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소속 ‘피해자 전담 경찰관’ 정의문(40) 경위는 자신의 직무를 이같이 정의했다.

 

28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정의문 영등포서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자신의 직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28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정의문 영등포서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자신의 직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범인이 검거되고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어도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경찰력이 가해자 수사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피해자들은 방치되곤 했다. 이에 경찰청은 2015년 ‘범죄 예방과 수사를 넘어 피해자의 회복까지 경찰이 책임진다’는 취지로 피해자 전담 경찰관 제도를 신설했다.

 

제도의 핵심이 피해자의 물리적·심리적 보호에 있는 만큼, 전담 인력의 상당수는 심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 경력채용(특채)으로 구성된다. 정 경위 역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도박중독 상담사, 경찰청 범죄피해평가 전문위원으로 일하다 2018년 경찰에 입직했다.

 

정 경위는 교제 상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시각장애인 피해자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사건 자체가 엄중했던 데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치를 기울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과거 강력범죄 전과까지 있던 극도로 위험한 인물로,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정 경위는 피해자와 자녀를 위해 심리 상담과 의료비·생계비 지원 조치를 취하는 한편,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주거지 현관 폐쇄회로(CC)TV 설치와 스마트워치 지급 등 촘촘한 물리적 안전망을 구축했다.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도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정 경위는 “가해자와의 대면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를 위해 법원에 ‘증인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법정 내 차단막 설치와 별도 이동 통로를 확보했다”며 “직접 법정 안까지 동행한 덕분에 피해자가 무사히 출석해 증언을 마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11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정 경위는 선고 결과까지 직접 확인해 전달하며 피해자가 사건의 충격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끝까지 곁을 지켰다.

 

심리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평소 장애로 인해, 자녀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정 경위는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한 1박 2일 가족힐링캠프에 피해자 가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참사 희생자의 유족을 보듬는 것 역시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역할이다. 2024년 9명의 희생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참사’ 당시, 정 경위는 공황 상태에 빠진 유가족 곁을 지키며 천천히 숨을 쉬도록 유도하고, 따뜻한 물과 두통약을 챙겨주며 신체 감각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정의문 영등포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 유희태 기자
정의문 영등포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 유희태 기자

정 경위는 “신체와 정서, 인지는 하나로 연동되어 있다”며 “극심한 충격을 받으면 자기 통제력을 잃고 호흡곤란 같은 신체 증상이 먼저 오는데, 이때 억지로 마음을 달래기보다 심호흡 등 신체안정화 기법을 활용해, 신체 증상을 먼저 가라앉혀야 정서도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때도 새벽 긴급 호출을 받고 출동해 유가족들을 보살폈다. 특히 소중한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 하는 유가족의 간절한 요청에 정 경위는 유류품 보관소에서 희생자의 스마트폰을 찾아 직접 집까지 전해다 주었다. 작은 소지품 하나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유가족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정 경위는 말했다.

 

피해자 및 유가족의 버팀목 역할을 하다 보니 정 경위의 업무용 스마트폰은 밤낮·휴일을 가리지 않고 울린다. 하루 평균 15통 안팎의 장시간 통화는 기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긴다. 마침내 피해자가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돼 일상으로 돌아간 순간이다. 정 경위는 “연락이 끊겼다는 건 일상으로 무사히 복귀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며 “이후에도 간혹 명절에 고마웠다며 안부 인사를 건네오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 한마디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다만 정 경위는 ‘경제적 피해자에 대한 지원 사각지대’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보이스피싱이나 금융사기 등 재산상 피해를 입은 이들은 제도적 한계로 현행 공적 지원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 확대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한층 강력한 제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경위는 “범죄 피해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고와 같다. 결코 자신을 탓하거나 혼자 숨길 일이 아니다”라며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피해자 전담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주저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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