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월드컵 대회가 그렇듯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많은 이변이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동유럽 불가리아가 8강전에서 ‘전차 군단’ 독일을 2-1로 무너뜨리고 4강에 오른 일이었다. 불가리아는 조별 리그 D조에서 ‘남미의 자존심’ 아르헨티나를 2-0으로 꺾으며 이미 두각을 나타낸 바 있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60) 선수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스토이치코프는 독일과의 8강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며 대형 스트라이커 출현을 예고했다.
당시 4강에 오른 불가리아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와 준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여기서 1-2로 패한 불가리아는 스웨덴과의 3·4위전으로 밀려났다. 객관적 전력 면에서 스웨덴이 한 수 위로 평가된 것은 사실이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스웨덴의 4-0 완승으로 끝났다. 단 한 골도 못 넣은 불가리아 측은 “스토이치코프를 득점왕(골든부트)으로 만들기 위해 경기를 운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스토이치코프와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러시아의 올레크 살렌코 선수가 나란히 6골로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불가리아는 3위를 포기하는 대신 스토이치코프가 스웨덴을 상대로 단 1득점만이라도 올려 단독으로 골든부트를 받길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 스웨덴의 비협조(?) 탓인지 이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은 48개국이 참여한 조별 리그 이후 32강 토너먼트로 치러졌다. 예나 지금이자 가장 관심이 높은 경기는 4강전, 그러니까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투는 준결승전이다. 준결승전이 끝나면 결승전과 3·4위전 단 두 경기만 남는다. 어떤 의미에선 결승전보다 더 큰 주목을 끄는 경기가 준결승전이다. 결승전에 출전할 두 팀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반면 준결승전에서 진 두 팀이 만나는 3·4위전은 축구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 4강에 올랐으나 준결승전에서 져 3·4위전으로 내몰린 모로코의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은 “4위보다 3위가 낫다는 사실은 이해한다”면서도 “우리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경기(3·4위전)는 우리가 맞이하는 최악의 경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19일 2026년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이 미국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무려 10골이 터지는 난타전 속에 잉글랜드가 6-4로 프랑스를 꺾었다. 시합 종료 직후 축구 팬들 사이에선 “헐거운 수비가 다득점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언론도 “월드컵 순위 결정전이라기보다는 (수비가 느슨한) 올스타전을 보는 듯했다”며 “3·4위전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7) 선수는 이날 두 골을 넣어 총 10골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을 제치고 북중미 월드컵 득점왕에 올랐다. 음바페를 득점왕으로 만들기 위해 프랑스·잉글랜드가 ‘담합’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어쩌면 월드컵 3·4위전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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