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견, “미국 땅 출생한 모든 이들의 권리”
트럼프, 의회 입법으로 뒤집기 주문
외국인 임신부 입국 금지 추진 논란 예고
이미 원정출산 단속 중…단속 강화될 듯
전문가 “헌법 개정 외엔 뒤집기 어려워”
미국 연방대법원이 7월 휴회를 앞두고 이번 주 잇따라 낸 판결 중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유지 판결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 기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입법으로 맞대응을 예고했지만, 미국 정가와 법조계에선 길고 복잡하더라도 헌법 개정 외에는 이를 돌려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출생시민권, 헌법상 권리”
미국은 신생아의 국적에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를 결합한 방식을 택한다. 미국 땅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부모의 국적과 관계 없이 무조건 미국인이다. 이는 수정헌법 14조(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사람은 미국인이라는 조항)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생 시민권이 불법체류자의 체류 지속과 ‘부유한 중국인의 원정출산’을 방조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1월 20일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에 불법·임시 체류하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게는 출생시민권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22개 주와 자치지역인 워싱턴은 행정명령이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에서 모두 법원이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판단한 뒤 연방대법원이 최종심의 결정을 내린 것이 이번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의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판결로 출생 시민권은 미국의 헌법상 권리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대법관 6명이 낸 다수의견에 따르면, “시민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권리를 갖기 위한 권리’, 즉 우리 정치 공동체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로 “수정헌법 14조를 제정한 선조들은 그 약속(권리)을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까지 확대“했다.
반면 대법관 3명의 반대 의견을 보면 출생 시민권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부정적 의견의 논리를 볼 수 있다. 반대 입장에 선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수정헌법 14조는 “해방된 흑인들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정헌법 14조 제정 당시에는 흑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속지주의 시민권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이 제도가 불법 이민을 방조한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헌법 개정 외엔 대법원 판결 무력화 어려워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대법원이 출생 시민권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큰 불행”이라고 적었다. 그는 “의회는 불공정한 출생 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오늘 시작해야 한다”며 수정헌법 14조를 개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개정 효과를 낼 수 있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라는 사실상의 입법 주문을 했다. 그는 헌법 개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을 거론하며 의회 입법을 촉구했다.
그 결과 보수 진영 일각에서 거론되는 방안은 임신한 외국인 여성의 입국을 막는 입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이제 누가 미국에 들어오는지를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미국 땅에서 아기를 낳기 위해 오고, 그 아기는 평생 시민권을 갖게 될 가능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임신한 외국인 여성의 입국을 막는 입법을 추진한다면 인권과 형평성 차원의 논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미 법무부는 외국인이 자녀의 미국 시민권을 노리고 입국 목적을 속인 채 미국에 들어와 아이를 낳는 행위를 일컫는 ‘원정 출산’ 사건들을 최우선으로 수사해 기소하라고 연방 검찰에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도 원정 출산을 조직하거나 알선하는 것은 이미 불법으로, 대규모 체포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 번 대법원 판결로 출생 시민권의 합헌 여부가 결정난 이상 의회 입법으로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간 의회에서 불법체류자의 자녀에 대한 출생시민권을 폐지하려는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됐지만 한 번도 통과되지 못한데다, 이제는 대법원 판례까지 위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건대 로스쿨의 헌법학자인 개릿 앱스 교수는 의회전문매체 롤콜과의 인터뷰에서 “다수의견 어디에도 의회가 법률로 수정헌법 14조의 출생시민권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길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필요하지 않다고 한 헌법 개정 뿐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엑스(X)에 “이번 판결은 단순히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할 수 없다는 절차적 판단이 아니라, 수정헌법 제14조가 시민권을 요구한다는 실체적 판단”이라며 “헌법 개정이나 미래 대법원의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리 유타주 상원의원 역시 “건국의 아버지들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원정출산이나 불법 국경침입으로 시민권을 얻는 나라를 의도하지 않았다”며 “긴 헌법 개정의 싸움이 이제 시작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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