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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벼랑 끝 ‘SOS’마저 소용없어… “죽을 때 데려가야 하나” [심층기획-죽어야 끝나는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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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수정 :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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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다 큰 자녀, 쓰러져 가는 부모

성인이 된 자녀들 통제 힘들어
폭행·버티기·고성에 속수무책
도움 절실하지만 기댈 곳 없어

자녀에게 목숨의 위협 느껴 자존감 저하
이웃들에게도 폭력 행사… 전과자 신세도

정신병원 입원해도 난동 부려 강제퇴원
온순하고 케어 가능한 아이만 시설 혜택

발달장애거주시설 입소도 폭력성에 발목
“증세 심할수록 도움 절실한데 벽 부딪혀”

45세 이상 거동 힘든 다운증후군 자녀
온종일 대소변 받으며 한시도 눈 못 떼

정부 탈시설 기조에 시설 축소·입소 제한
중년 발달장애인 갈 곳은 사실상 사라져

어둠이 짙게 깔린 경북 안동의 20평 남짓한 아파트. 쩍 금이 가 테이프를 붙여둔 찬장에 부서진 행어, 움푹 패어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방문까지 뭐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이곳에서 박정란(60)씨는 늦은 밤마다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다.

 

늘 극도의 긴장 상태인 탓에 ‘혈당 스파이크’가 와야만 기절하듯 잠들 수 있어서다. 박씨는 “토할 때까지 먹으면 혈당 스파이크가 확 올라와 잠이 온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자려고 먹는 것”이라며 “당뇨 환자가 이렇게 먹다 보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울먹였다. 현재 박씨는 유방암, 갑상선 저하증, 고혈압, 당뇨를 앓고 있다.

 

박정란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배동윤씨가 뮤지컬을 보러간 모습. 박정란씨 제공
박정란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배동윤씨가 뮤지컬을 보러간 모습. 박정란씨 제공

박씨를 이토록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배동윤(21)씨다.

 

어릴 적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배씨는 예민한 성격 탓에 작은 외부 자극과 환경 변화에도 취약하다. 인근 활동지원사들이 학을 뗐을 정도로 도전 행동(폭력적 행동, 버티기, 고성 등)이 심해 돌봄은 온전히 박씨 몫이다.

 

“안 돼”, “틀렸어”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물건이 부서지거나 사람이 다친다. 키 180㎝, 몸무게 140㎏ 거구가 분노를 쏟아내는 종착지는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 박씨다.

 

그래도 지금보다 젊을 땐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병에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 그 사이 자신보다 두 배가량 커진 아들의 주먹을 견디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미 한계다. 박씨 모자(母子)와 관련된 112 신고 누적 건수만 100여건이다. 인근 지구대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올해 3월은 박씨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청주 형부의 문상에서 돌아오는 길, 이화령 고개를 넘던 차 안에서 박씨의 오른쪽 얼굴로 갑자기 주먹이 날아들었다.

 

휴게소에서 사준 초콜릿 봉지가 열리지 않아 끙끙대던 아들에게 뜯는 법을 알려준 것이 화근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운전대에 두 손이 묶여 있던 터라 “죽여버릴 거야”, “어떻게 죽여줄까”라는 폭언 속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온전히 얼굴로 받아내며 가까스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일주일 동안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한 폭행이었다. 박씨는 “아들을 겨우 진정시킨 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설움에 1시간여 통곡했고 아들은 초콜릿을 집어 먹었다”며 “가드레일로 핸들을 틀어버릴까 수백번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도움이 절실할수록 세상은 더 차가워졌다.

 

아들의 도전 행동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 되자 활동지원사들은 모두 손을 들고 떠났다. 그 탓에 한때 영어 교사였던 박씨도 직장을 그만두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아들의 난동 수위가 높아져 경찰이 정신병원에 ‘행정입원’(타인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자를 비자의적으로 입원) 조치를 했다. 하지만 병원이 당일부터 아들의 폭력성과 건강 악화 가능성을 이유로 퇴원을 종용해 결국 3일 만에 다시 집으로 데려와야만 했다.

 

벼랑 끝에 선 박씨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국가였지만 헛수고였다.

 

안동과 본가가 있는 청주 인근에 있는 발달장애인거주시설을 알아봤지만 아들의 ‘폭력성’이 또 발목을 잡았다. 숨통을 틔울 유일한 동아줄일 줄 알았던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통합돌봄서비스’ 역시 선정 여부가 불투명했다. 대기인원이 많아 기약조차 없었다. 박씨는 “자폐 증세가 심할수록 도움이 더 절실한 법인데 오히려 도움받기가 더 어려우니 벽에 부딪히고 절망하게 되는 거 아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박는 자해를 해 이마가 심하게 부푼 정미(가명)씨의 모습.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박는 자해를 해 이마가 심하게 부푼 정미(가명)씨의 모습.

◆115㎏ 딸에게 저항 못하는 부모

 

최모(57)씨와 하모(66)씨 부부도 박씨와 처지가 비슷하다.

 

조현병과 자폐증 중복 장애를 가진 둘째 딸 정미(가명·33)씨는 성인이 될 무렵부터 기분이 언짢으면 부부를 화장실로 불러내 ‘변기’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자신이 서서 때리기 가장 좋은 위치라서다. 키 165㎝, 몸무게 115㎏ 딸이 위에서 망치처럼 내리찍는 난타에 최씨는 뇌출혈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다. 부부에게 딸을 제압할 힘이 없을뿐더러 저항하면 폭행의 시간과 강도만 커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해서다.

 

견디다 못한 최씨는 도망치듯 집을 떠나 언니 집에서 9개월간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드니 제발 돌아와 달라”며 찾아온 남편의 얼굴을 본 순간 ‘맞아 죽더라도 같이 죽자’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터진 입술, 양쪽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코피를 흘리고 있는 남편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딸에게 맞아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진다. 우울증약을 10년째 복용 중인데 약 없으면 잠을 못 잔다”며 “현재 갱년기, 고혈압에 고지혈증까지 생겨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가정 폭력은 이골이 나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딸의 도전 행동이 집안 담장을 넘어 이웃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다. 부부가 지문이 닳도록 빌고 머리를 조아리고 딸의 상태를 설명하며 사과해도 “법대로 하자”는 차가운 한마디만 돌아왔다. 지금까지 딸 때문에 지불한 합의금만 어림잡아 6000만원이 넘는다.

 

주거지를 서울에서 경기로 옮긴 것도 딸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에서 거주하던 당시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딸이 청소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 단지 내에 주차돼 있던 이웃 주민 차량이 반파됐다. 동네 주민이 맞았다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이 일로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부부는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연고도 없는 경기 외딴 단독주택으로 쫓기듯 이사해야만 했다.

 

이사 간 곳에서도 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이웃집 마당에 무단침입을 시도하다 이를 발견하고 막아선 여성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는 “장애가 있더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고, 결국 법정 공방 끝에 서른이 넘은 딸은 ‘형사 처벌’을 받고 전과자가 됐다.

 

이웃을 향한 정미(가명)씨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집 전체를 둘러친 철제 펜스.
이웃을 향한 정미(가명)씨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집 전체를 둘러친 철제 펜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자, 부부는 높고 촘촘한 ‘펜스’를 제작해 집을 둘러쳤다. 딸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도 가끔 마트를 가거나 산책을 할 때 잠시라도 눈을 떼면 여지없이 사고가 난다. 최근에도 한 여성을 공격해 합의금으로 150만원을 물어줬다.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에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지만 ‘최중증’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병원에 6차례나 입원시켰지만 간호사 폭행에 기물 파손 등 난동을 부려 3개월의 법적 입원 기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번번이 강제 퇴원 조치가 이뤄졌다.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에 전화를 돌려도 ‘아이가 난폭하냐’는 질문이 제일 먼저 돌아왔다. 폭력성 유무가 확인되는 순간 단칼에 입소가 거절됐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센터를 이용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며 활동지원사도 매칭이 안 돼 부부는 수년간 돌봄과 매질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1년여 전 겨우 활동지원사가 매칭돼 낮 동안은 한숨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 활동지원사도 종종 좌절을 토로해 ‘혹시 그만두지 않을까’ 부부는 전전긍긍이다.

 

부부가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사라진 뒤 두 딸의 삶이다.

 

정미(가명)씨의 잦은 도전적 행동에 의해 부서진 문.
정미(가명)씨의 잦은 도전적 행동에 의해 부서진 문.

아픈 둘째에게 신경 쓰느라 제대로 관심조차 주지 못하고 동생의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던 큰딸에게 다시 짐을 지울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 둘째가 구속복을 입고 짐짝처럼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도 않다. 최씨는 “지금 복지가 좋아져서 나라에 맡기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온순하고 케어가 가능한 아이 이야기”라며 “저희 아이는 갈 데가 없다. 우리가 죽을 때 데리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남편과 이야기한다”고 울먹였다.

 

◆40대 딸 수발드는 70대 노모

 

서울에 사는 박모(70)씨는 국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지만 올해 45살이 된 딸 보화(가명)씨를 보살피느라 제 몸 돌볼 시간이 없다.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중복 장애를 가진 딸은 한때 빵집에서 일할 정도로 비교적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발달장애인 특유의 ‘초고속 노화’가 겹치며 말하는 법도, 스스로 걷는 법도 잊었다. 이제는 휠체어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리에 힘이 없다. 괜히 걸으려다 앞으로 고꾸라져 앞니가 모두 부러지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을 돌보는 일은 70세 노모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다.

 

82세 남편이 있지만 딸이 아빠를 거부해 사실상 독박돌봄이다. 딸을 씻길 때나 휠체어로 옮길 때 넘어지지 않게 꽉 붙잡고 버티는 일이 반복되며 박씨의 어깨는 갈수록 망가졌다. 결국 오른쪽 어깨는 힘줄이 끊어져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양쪽 어깨에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아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심한 저혈압 탓에 기력이 떨어지는 상황에도 박씨는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박씨는 “딸이 수면제를 먹어도 깊이 잠들지 못하기에, 혹여 자는 사이에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늘 불안해 제대로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나 대신 아이 좀 들여다봐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온종일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한시라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 가혹한 노동을 대신해 줄 리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다. 그나마 2년 전부터 겨우 활동지원사 제도를 알게 돼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박씨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눈을 감은 다음 날’이다.

 

이런 불안감에 지난해부터 요양원과 장애인 거주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믿고 맡길 만하다고 생각된 시설들은 이미 정원이 차 있고 대기인원도 넘쳐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정부의 ‘탈시설’ 기조에 따라 기존 장애인 거주시설이 축소되거나 신규 입소가 제한되면서 중년 발달장애인이 갈 곳은 사실상 사라졌다. 박씨가 전국 시설을 수소문했으나 “45세 이하만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령 제한이나 기약 없는 대기 순번에 가로막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비극을 접할 때마다 박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무서워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진퇴양난에 빠져 사방이 꽉 막힌 그 부모들의 심정을 백번 천번 이해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오죽하면 건장하던 남편마저 나에게 몇 번이나 ‘우리 딸이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우리 보고 다 같이 죽으라는 거냐 뭐냐’고 울부짖었겠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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