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지연에 다시 뜬 4.5세대
한국도 F-35·F-15K 조합 주목
최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던 세계 전투기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이 진행하던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사업의 핵심이었던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좌초되고, 영국·이탈리아·일본이 참여한 글로벌전투항공체계(GCAP) 사업마저 논란에 직면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를 조합하는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공군전력의 활용을 최대한 높여서 대비태세 및 산업 기반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질과 양을 함께 추구한다
F-22·35로 대표되는 스텔스기는 방공망이 밀집한 위험 지역에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약도 적지 않다.
스텔스기는 단가와 운영비가 매우 비싸다. F-22의 비행시간당 운용비는 8만5000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F-15EX가 3만 달러 이하인 것으로 감안하면 F-22가 훨씬 높다. 스텔스기만으로는 공군 전력 규모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해 다수의 무인기를 스텔스기와 함께 투입하는 대안이 있으나, 완전작전능력(FOC) 달성 시점은 불확실하다.
성능개량을 거친 4.5세대 전투기의 대량 운용은 유·무인 복합체계가 FOC에 접어들기까지 갭 필러(Gap Filler)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장탑재량은 낮지만 적 레이더 포착 위험은 매우 낮은 스텔스기는 적 방공망을 돌파해 전략 표적을 타격하거나 방공망을 제압한다.
이후 4.5세대 전투기는 높은 무장 장착량과 공격력을 이용해 근접항공지원(CAS) 등의 공대지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평시에도 유용하다.
운영비가 높은 F-22, F-35 대신 4.5세대 전투기를 공중치안유지, 조종사 훈련 등에 투입하면 공군 전력의 평시 작전과 조종사 숙련도 유지에 효과적이다.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 조합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핵심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4.5세대 전투기가 스텔스기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를 갖춰야 한다.
F-35가 수집·융합한 정보를 4.5세대 전투기도 공유하면서 합동작전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FCAS의 핵심인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취소됐지만, 전투 클라우드 등의 계획은 지속되는 것도 이같은 필요성과 무관치 않다.
적기의 탐지·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고성능 전자전 체계와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 등도 필수다.
작전 측면에선 임무 영역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방공망 위협이 높은 곳에 비스텔스기를 투입하면 손실이 급증하는 양상이 드러났다.
따라서 F-35같은 스텔스기는 방공망을 돌파해 전쟁 지휘부를 타격하거나, 레이더를 파괴하는 작전, 개전 직후 첫 공습 등의 임무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스텔스기가 방공망을 제압하고 공중 우세를 확보하면, 4.5세대 전투기가 나서서 지상 공격 등을 진행한다.
전력 구조 측면에선 유·무인복합체계 구축이 지연될 위험에 대비,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 조합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력 공백을 막으면서 조종사들이 미래전에 대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F-47과 F-15EX에 집중하는 미국
세계 항공작전 개념을 주도하는 미국은 6세대 전투기인 F-47과 4.5세대 F-15EX 전투기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F-47이 2030년대 중반까지 전력화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 공군은 F-15EX 구매량을 늘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F-15EX는 13.4t의 탑재량을 지니고 있으며, 암람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12발 또는 그에 상응하는 중량의 무장을 탑재한다. 재즘 이알(JASSM-ER)을 비롯한 장거리 타격무기를 사용한다.
F-47은 F-35보다 우수한 스텔스 능력과 센서 융합 및 네트워크 체계를 탑재한 채 다수의 무인기를 운용하는 유·무인 복합체계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스텔스 성능을 위해 항공무장을 기체 내부에 수납하므로 무장탑재량은 높지 않다.
F-15EX는 F-47의 이같은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F-47이 적 방공망 안에서 표적 정보를 확보·공유하면, F-15EX가 먼 거리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퍼부어 지상 표적을 파괴하는 작전이 가능하다. F-47의 스텔스 성능과 F-15EX의 공격력을 조합한 결과다.
적군으로선 방공망에 침투한 F-47, 방공망 밖에 있는 F-15EX 중에서 어떤 기체에 먼저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F-15EX는 F-47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비행시간은 더 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F-47 도입 규모가 미 공군 작전수요를 완전히 충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F-15EX가 이같은 공백을 일정 수준 대체할 수 있다.
다만 F-47 구매량이 충분한 수준까지 확보되어야 F-15EX의 잠재력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F-15EX는 스텔스 성능이 없으므로, 고도로 구축된 적 방공망에 전진배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F-47이 먼저 나서야 하므로, F-47의 역할도 중요하다.
◆유럽도 변화…한국의 교훈은
유럽은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이었던 FCAS가 사실상 좌초하고, GCAP도 논란을 겪고 있다. 6세대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를 조합할 시점이 불투명해진 셈이다.
단기적으론 F-35 제작사인 미국 록히드마틴이 가장 큰 수혜를 얻을 전망이다. 유럽의 6세대 전투기 개발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검증된 스텔스 옵션인 F-35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F-35 비중이 늘어난 상황을 감안하면, 유럽 시장은 F-35와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가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은 FCAS 좌초 후 에어버스 주도로 헨솔트·MTU 등이 합류하는 ‘팀 젠 6’(Team Gen 6) 컨소시엄이 등장했다.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독일 회사들은 개별적인 구성품에선 경쟁 우위가 있으나, 이를 통합해서 전투기를 개발하는 능력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독일은 많은 무장을 탑재해서 공격하는 전투기를 선호한다. 때문에 스텔스 수요는 35대 구매를 결정한 F-35를 추가 도입하고, 4.5세대 전투기인 타이푼을 성능개량해서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타이푼 최신형은 첨단 AESA 레이더와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통합, 전자전 시스템 전면 현대화, 엔진 개량 등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2040년대까지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F-35 도입국인 영국도 전자공격 능력을 강화하고, 브림스톤 등의 항공무장을 추가한 타이푼 개량형 확보를 추진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는 한국에도 상당한 교훈을 제공한다.
한국도 2040년대 중·후반쯤 6세대 전투기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20여년에 달하는 시간이 남아있고, 제때 도입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성능개량이 진행중인 F-15K 전투기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 종심 타격능력을 갖췄다.
F-35와 F-15K의 전술데이터링크를 서로 연결하면, 스텔스기와 4.5세대 전투기의 조합을 구성할 수 있다.
F-35가 적 방공망 침투 및 제압과 표적 탐지를 맡고, F-15K가 ‘미사일 트럭’으로서 장거리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을 적 표적에 대량으로 투하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공군이 6세대 전투기 도입과 유·무인 복합체계를 전력화할때까지의 공백을 메워주는 대체 전력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 공군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안보환경에 직면해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중국의 6세대 전투기 개발, 일본의 GCAP 참여 등은 한국 공군을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항공전력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전력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보유 중인 전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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