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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 ‘시들’… 후보 대신 전·현직 대통령만 보였다 [6·3 국민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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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배민영·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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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퇴색된 지방선거

중앙정치 중심 진영논리 횡행
지역 현안·후보경쟁 후순위로
내란심판 vs 정권심판 구호만
대통령 등판시켜 대리전 양상

선거결과, 당대표 리더십 영향
“후보 공약·생활의제 집어삼켜
지방의 중앙 종속 심화” 지적

6·3 지방선거에서는 ‘내가 사는 지역의 일꾼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가 좀처럼 부각되지 못했다. 지역 현안과 후보 경쟁은 뒤로 밀렸고, ‘내란 심판론’과 ‘정권 심판론’ 등 중앙정치 구호와 진영 논리가 선거판을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현직 대통령의 행보까지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선거는 여야 대리전 양상으로 흘렀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갈등도 한층 증폭됐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챙기는 기초 의원·단체장 선출의 장이 중앙정치권의 ‘대리전’으로 소비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를 찾아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날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유세를 지원하는 모습. 부산·대구=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를 찾아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날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유세를 지원하는 모습. 부산·대구=연합뉴스

◆당대표 대신 전·현직 대통령 부각

이번 선거에서 당의 ‘얼굴’ 격인 당대표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거대 양당의 두 대표 모두 중도층 민심이 좌우하는 격전지 공략에 한계를 드러내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영남권 등 험지 방문을 자제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역시 수도권 등 주요 격전지에서 후보들과의 동행 유세를 최소화했다. 유세 동선이 제한되면서 선거 막판에는 두 대표가 각각 연고가 있는 충남을 중심으로 활동 무대가 겹치는 모습마저 나타났다.

양당 대표가 각 당의 가치와 비전을 전면에 내세워 승부를 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전·현직 대통령들이 선거전에 적극 등판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선거 기간 중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부산·경남 등 영남권은 물론 서울과 충청 등 격전지를 돌며 국민의힘 후보 지원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도 사전투표를 앞두고 1박2일 일정으로 경남과 부산의 민생 현장을 찾는 등 측면 지원에 힘을 보탰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전·현직 대통령들이 선거 전면에 등장하면서 지방선거의 중앙정치 종속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5월 27일 부산 영도구 남항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5월 27일 부산 영도구 남항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 탄핵됐던 박 전 대통령이 대전·대구·부산·충청·강원 등을 돌고, 형사처벌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서울·부산을 오가며 국민의힘 지원 유세를 한 데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유권자들에게 지방선거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고 ‘중간선거’의 성격도 있어서 반드시 전직 대통령의 등장을 잘못이라고 볼 순 없다”면서도 “그 사안이 지방 이슈를 압도하는 수준일 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두 전직 대통령들이 탄핵당하고 법의 심판을 받았던 것은 유권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이슈”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이·박 전 대통령의 등장은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이 크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이 나서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스타벅스 비판 발언을 두고선 “지지층 결집용 메시지로 보수층이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했다. 채 연구원은 “전·현직 대통령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지역 일꾼론’을 강조해야 할 지방선거에서 중앙정치 이슈가 더 큰 관심을 받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당파적·정파적 양극화가 심화됐고, 결과적으로 선거가 정책과 공약을 서로 비교하고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운데)가 3일 국회에서 열리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하고 있다. 정 대표는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 등을 향해 “그동안 열과 성을 다했을 모든 분에게 이 시를 바친다”고 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운데)가 3일 국회에서 열리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하고 있다. 정 대표는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 등을 향해 “그동안 열과 성을 다했을 모든 분에게 이 시를 바친다”고 했다. 뉴시스

◆지방의 중앙 종속 심화

지방선거 결과가 양대 정당 리더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도 지방 의제를 밀어낸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의 경우 8월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선출한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의 잔여 임기가 1년 더 남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양당 대표가 지방선거 성적에 따라 책임론을 떠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3대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당대표직을 둘러싼 당권 경쟁이 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지역 공약과 생활 의제가 중앙정치 이슈에 가려졌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운데)가 3일 국회에서 중앙선대위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장 대표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내 삶과 나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주권자의 위대한 힘을 보여 달라”고 했다. 뉴스1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운데)가 3일 국회에서 중앙선대위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장 대표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내 삶과 나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주권자의 위대한 힘을 보여 달라”고 했다. 뉴스1

채 연구원은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하위 무대이자 대리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면서 “결과적으로 진영 정치를 더 강화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선동의 장으로 만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수찬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민주당의 공천 잡음 등이 이번 선거를 잠식하는 데 한몫했다”며 “특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전당대회와 맞물려 선거가 진행되다 보니 차기 당권 경쟁 구도가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고 했다. 윤 교수는 “지방정치의 중앙 종속을 막으려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으로 3종(대선·총선·지방선거) 선거를 2종으로 줄여야 한다. 대선과 지방선거 주기를 맞추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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