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광호에게서 가져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광호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딸 하진은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선 광호에게 손부터 내밀었다.
“아빠, 차 키 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 하진의 손에는 노란색 앨범 커버가 씌워진 카세트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영국 록밴드 ‘블러’의 3집 앨범 ‘파크라이프’다. 하진이 태어나기 13년 전에 발매된 음반이었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하진은 광호가 모아둔 앨범 사이에서 그 테이프를 용케 찾아냈다. 그런 딸을 보며 광호는 생각했다. ‘취향도 유전이 될까.’
자신과 똑같은 동그란 안경을 코에 걸친 딸아이의 손에 노란색 카세트테이프가 들려 있는 날이면 광호는 별말 없이 차 열쇠를 쥐여줬다.
광호가 가정을 꾸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꼬박 21년을 버틴 쌍용자동차의 2005년식 렉스턴.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 낡은 상아색 차는 하진만의 작은 공연장이었다. 하진은 진한 녹색 번호판과 카세트플레이어가 달린 아빠 차를 타러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눅눅한 지하의 공기를 마시며 바닥에 검게 남은 타이어 자국 사이를 지나 렉스턴 운전석 문을 열었다. 아빠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던 “시동 말고 전원만 켜”라는 말을 떠올렸다. 말랑하게 꺼진 검은색 가죽 시트에 앉아 차 열쇠를 꽂았다. 손목에 힘을 주어 시동 장치 한 칸만 돌리자, 오디오 데크 액정의 검은 배경 위로 초록빛 글자 ‘NO TAPE’(테이프 없음)가 툭 떠올랐다.
하진이 블러의 앨범을 데크 입구에 가져다 대자 테이프가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댔다. 곧이어 렉스턴 실내 곳곳에 박힌 여섯 개의 스피커가 소리를 뿜어냈다. 앨범의 첫 트랙 ‘걸즈 앤 보이즈’의 뿅뿅거리는 신시사이저 소리가 먼저 차내에 퍼졌다. 손끝으로 다이얼을 돌려 볼륨을 키웠다. 그러자 묵직한 베이스라인이 차 바닥을 타고 하진의 발바닥까지 울렸다.
하진은 한동안 이 앨범에 푹 빠져 있었다. 자주 되감아 듣던 탓에 테이프 첫 부분이 끊어지기까지 했다. 광호는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며 테이프를 들고 올라온 딸에게 얇은 갈색 필름 폭에 맞는 셀로판테이프로 이어 붙여줬다.
취향과 감성, 안경 모양까지 아빠를 빼다 박은 아이였다. 광호의 아내는 남편을 보며 하진의 눈코입을 떠올렸고, 광호는 그런 딸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다. 아빠와 가장 닮은 딸을 자신이 모를 리 없다는 확신. 그 확신은 광호의 가장 오래 남은 자책이 됐다.
하진의 세계가 좁아지기 시작한 건 2020년 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는 학교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3월2일 첫 등교일은 네 차례나 번복되며 미뤄졌다. 하진은 서울 강북 산자락을 따라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의 방 안에만 내내 머물렀다. 새 교복을 걸어두고 기다린 지 99일째 되던 6월8일에야 중학교 1학년의 등교 수업이 시작됐다.
하진은 식구 중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막 등교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보름간의 격리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교실은 이미 서로의 자리를 만든 뒤였다. 단 15일이었지만 마스크를 쓴 아이들은 그사이 무리를 이뤘다. 하진은 이미 자리가 정해진 교실에 뒤늦게 들어가야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방 안에 머무는 시간도 자연스레 늘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하진은 가족에게 “우울하다”고 자주 말했다. 이 무렵 하진은 가족과 말다툼을 하고 나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했다. 날카로운 말들을 골라 가족에게 쏟아냈다. 삶의 끝자락을 건드리는 단어를 던지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우울하다고 토로하는 하진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을 나오던 날, 하진의 손에는 약봉지가 쥐여 있었다.
코로나19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속절없이 길어지면서 하진이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할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나마 광호를 안심시킨 건, 집 안에 쌓여 있던 오래된 앨범을 하나씩 꺼내 들던 하진의 모습이었다. 광호가 학창 시절부터 모아온 CD와 카세트테이프들. 플라스틱 케이스가 뿌옇게 닳은 앨범들을 하진은 보물찾기라도 하듯 한참을 뒤적였다.
음악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하진을 문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광호는 거실 텔레비전에 미국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 ‘대니 캘리포니아’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잘게 굴리며 시작하는 드럼 소리가 하진의 방문을 두드리면, 방 안에 누워 있던 하진은 거실로 나와 아빠 옆에 앉았다. 발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짚을 때마다 화면 속 멤버들은 그에 맞춰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번들거리는 머리에 하이웨이스트 나팔바지를 입은 로큰롤 가수로 시작해, 반짝이는 글램 록 스타, 검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헤비메탈 로커와 그런지 록 밴드를 거쳐 다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로 이어졌다. 한 편의 영화처럼 록의 변천사가 빠르게 흘러갔다. 광호는 그 장면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 장면은 록이 처음 태어나던 시절. 자 여기서부터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져.”
그러는 동안 하진의 표정도 달라졌다. 어느새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광호의 손끝을 따라가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광호는 소파에서 몸을 떼며 방에 들어가려 했다.
“아빠 가지 마요. 아빠가 음악 얘기해 주는 게 제일 좋아.”
그 한마디에 광호는 딸이 자신 곁에 가까이 붙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시기 팬데믹은 끝이 없었고, 하진의 우울감도 쉽게 걷히지 않았다. 하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에 하진이 하루에도 서른 개가 넘는 글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먼저 알아챘다. 혐오와 비하, 자학과 우울, 극단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익명의 글들이 올라오는 공간이었다. ‘친구가 없다,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 정도면 찐따인가’라고 뱉어내는 누군가의 우울과 조롱이 뒤섞인 문장들이 농담처럼 소비됐다.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않아도 누구나 게시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진의 엄마는 로그인이라는 문턱이 없는 공간에서 딸의 흔적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진의 활동명은 ‘초록나무’였다.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엄마는 딸의 활동명으로 올라오는 글을 틈틈이 모니터링했다. 글을 쓸 때마다 사진을 함께 올려야 하는 커뮤니티 특성상 하진은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의 사진을 붙여넣었다. 그 갤러리에 글을 쓰는 하진을 보며 “관심받고 싶어 하는 나이니까” 하고 넘어가려 해도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다. 광호는 하진에게 “거기에 글 쓰지 말라”고 몇 차례 타일렀다.
광호는 하진의 손에 휴대폰 대신 무언가라도 쥐여주고 싶었다. 딸의 15번째 생일에 맞춰 기타를 깜짝 선물로 준비했다. 노란빛에서 짙은 갈색으로 번지는 선버스트 색상의 30만원짜리 국산 전자기타였다. 12월 생일, 집으로 배송 온 기타를 받아든 하진은 환하게 웃었다.
하진의 웃는 모습은 광호의 젊은 날과 계속 겹쳐졌다. 어느 날 하진은 광호가 연주하던 통기타를 가지고 종로구 낙원상가에 가서 줄을 갈고, 피에조 픽업을 달고 돌아왔다. 통기타의 울림을 스피커로 키워주는 장치였다.
그해 가을, 하진은 그렇게 손본 아빠의 기타를 어깨에 메고 학교 축제 무대에 올랐다. 학교 정문 앞 계단이 그날의 무대였다. 하진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흰색 마스크 너머로 불렀다.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난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야. 난 별난 사람이야.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
마스크를 쓴 채 운동장에 반원처럼 퍼져 앉은 친구들은 정박에 맞춘 손뼉을 쳤다. 축 처진 기타 멜로디는 반듯한 박수 소리를 비껴가고 있었다. 광호는 자신의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딸과 통하는 건 음악만이 아니었다. ‘석양의 감정’이라는 자작시가 적힌 공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든 하진의 모습을 바라봤다. 광호는 문득 고등학생 시절 문예부에서 시를 쓰던 때를 떠올렸다. 딸의 침대에 놓인 공책을 무심코 손에 들었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하진은 “아빠! 이리 내놔!”라며 공책을 휙 낚아챘다. 광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내 딸 맞네.”
하진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2022년, 3년 넘게 이어졌던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 말, 광호와 하진이 함께 좋아하던 포스트록의 거장 ‘시규어로스’의 5년 만의 내한 공연 소식이 전해졌다.
하진이 먼저 아빠를 찾았다. 광호는 망설임 없이 8월에 열릴 공연 티켓 두 장을 예매했다. 둘이 함께 가는 첫 콘서트였다. 부녀는 공연장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연주를 함께 듣게 된다는 사실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공연 당일, 시작 여덟 시간을 남기고 장비 운송 문제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그날 쓰이지 못한 종이 티켓은 광호의 사무실 서랍 한쪽에 보관돼 있다.
하진은 강북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강남으로 이사했다. 걱정과 달리 고등학교에 무리 없이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방 안에만 머무르던 시간도 예전보다 짧아졌고, 학교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날이 늘었다.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커뮤니티도 끊었다”고 말하며 가족을 안심시켰다.
안도감이 자리를 잡아가던, 2023년 4월20일 광호의 퇴근길에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가족 단체 대화방이었다. 하진이 집 근처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광호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 곳곳에 붙은 “뛰지 마세요. 부딪힘 많은 곳”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광호를 스쳐 지나갔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지하 2층에 있는 화장실부터 살펴봤다. 주황색 타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얼굴로 밀려왔다. 물 내리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손 씻는 소리가 한꺼번에 뒤엉켰다. 하진은 없었다.
지하 1층 화장실로 뛰었다. 길게 이어진 환승 통로 끝에 화장실이 보였다. 그곳에서 하진은 이미 들것에 실려 있었다. 광호는 곧바로 하진과 함께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하진은 가족에게 “자살 시도한 거 아니야. 내일 학교 갈 거야”라고 말했다. 광호는 그 말을 믿었고, 믿고 싶었다. 딸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겨온 그였다.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는 희망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그래. 우리 딸은 내일 학교에 갈 거야.’
광호는 그날, 끊어졌던 카세트테이프를 이어 붙였던 것처럼 딸의 삶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중앙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의 이현지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자에게도 하진은 망설임 없이 상담을 받겠다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동의서도 썼다. 담담해 보이는 하진을 보며 사례관리자도 안심했다. 하진과 사례관리자는 퇴원하고 만나기로 약속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하진은 평온해 보였다. 평소처럼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광호는 딸이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닷새 뒤 저녁, 엄마는 둘째와 함께 집 근처 먹자골목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곳에서 교복 차림의 하진을 마주쳤다. 엄마는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하진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근처에서 놀다가 9시까지 집에 들어갈게”라고 말하는 딸을 더 붙잡지 않았다.
그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온 광호가 집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 이후 엄마와 둘째가 들어왔다. 밤 10시가 됐다. 하진만 들어오지 않았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빠의 직감이 반응했다. 단순히 늦는 게 아니라는 불안이 광호의 가슴 한쪽을 눌렀다.
엄마도 불길한 예감에 휴대폰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열었다. 화면 위에서 떨리는 손이 그날 오후 3시 무렵에 올라온 게시물 앞에서 멈춰 섰다. 활동명 ‘설연최’가 자살 방법을 묻는 게시물이었다. 설연최는 그곳에 자살 방법을 게시했다. 그 게시물의 댓글난에 ‘초록나무’의 댓글도 보였다.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고 알렸다.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댓글 내용, 마지막으로 마주친 위치까지 숨 돌릴 틈 없이 경찰에 전했다.
방배경찰서 실종범죄수사팀을 비롯해 경찰들은 밤새 수색에 나섰다. 하진의 마지막 위치 신호를 파악하고 지역에 있는 순찰차를 끌어모아 수색 범위를 좁혀갔다. 스무 명이 훌쩍 넘는 경찰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가족은 한동안 길거리에서 하진을 찾아 헤매다 자택에서 기다리라는 경찰의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고를 마친 뒤에도 엄마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혹시라도 새로운 댓글이 올라오지 않을까, 삭제되진 않을까 봐 몇 번이고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동틀녘, 광호는 다시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닷새 전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인근 화장실에 있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했다. 하진의 휴대폰 위치 추적도 지하철역 일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광호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은 하진의 휴대전화 위치가 갑자기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광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붙잡았다.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광호의 아파트 1층 출입구 앞에 구급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경광등이 붉게 번뜩였다. 딸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과 저 불빛이 하진을 향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붉은빛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하진의 이름이 스쳤다. ‘遐(멀 하), 辰(별 진).’ 그 이름처럼 딸이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길….
광호는 아빠의 직감이 틀리길 간절히 바랐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십 층을 넘어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심장도 조여왔다. 문이 열렸을 때 경찰과 구급대원이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왔어야 할 딸은 끝내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밤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그 불길한 단어가 하진의 옆에 놓여 있었다.
<에필로그> 올해 4월25일, 하진의 3번째 기일. 살아있었다면 대학교 새내기가 됐을 나이다. 광호는 뒤로 큰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이 흐르는 경기도의 한 납골당을 혼자 찾았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호는 하진에게 선물했던 선버스트 전자기타를 지방으로 내려가 태웠다.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보이던 기타는 불길 속에 서서히 검게 변해갔다. 하진이 아빠에게서 가져갔던 통기타도 함께 태웠다. 광호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목 기타 두 대에 붙은 불은 20분이 넘도록 꺼지지 않았다. 광호는 나무가 탄 냄새가 옷에 밴 채로 집에 돌아왔다.
그 뒤로 광호는 더는 20세기 음악을 듣지 않는다. 하진이 록에 입문하는 계기였던 미국 밴드 너바나부터 영국 싱어송라이터 닉 드레이크까지. 10대부터 광호의 것이었던 음악들은 이제 모두 하진과 함께한 시간 속에 있었다. 요즘 그가 듣는 것은 하진이 떠난 뒤에 발매된 음악들이다. 2025년에 데뷔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 키키의 ‘404(New era·새 시대)’를 가장 자주 튼다. 광호는 하진을 불러내지 않는 음악을 찾는다. 하진이 가져간 것들은 끝내 광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탐사보도1팀=조병욱(팀장)·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 유희태 기자
편집: 최미숙 기자, 미술: 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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