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뒤 서울 잠실야구장을 떠날 때 올해 느낌은 유독 쓸쓸하게 다가온다. 2026년을 끝으로 한국 스포츠의 심장부였던 이곳과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콘크리트 시설물의 철거일지 모르나 그곳에 청춘과 열정을 묻어둔 이들에게는 삶의 한 조각이 사라지는 느낌일 수도 있다.
잠실야구장과 잠실체육관. 한국 스포츠의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던 이 역사적 현장들이 이제 ‘스포츠·MICE 복합단지’라는 거대한 미래를 위해 사라져야 한다.
잠실야구장의 첫 기억은 TV로 봤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이었다. 8회말 김재박이 몸을 날려 성공시킨 ‘개구리 번트’로 시작돼 한대화의 역전 홈런으로 이어진 짜릿한 승리의 전율이었다. 한국 야구의 자부심을 일깨운 이 경기는 잠실을 한국 야구의 성지로 만들었다. 필자에게 이곳은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의 함성을 직관으로 마주했던 곳이었고 성인이 돼 스포츠 기자로서 치열한 취재와 마감의 현장이었다.
옆 동네 잠실체육관은 또 어떤가. 2009년 1월 원주 동부와 서울 삼성의 5차 연장전은 지금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설로 그때도 필자는 운명처럼 현장에 있었다. 신문 마감시간이 훌쩍 지나서 경기가 끝나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실체육관을 홈으로 사용하는 서울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탈락하면서 아직 시즌이 남아있는 야구장과 달리 잠실체육관과 농구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낡은 것을 보내주는 것은 순리다. 야구장과 체육관 모두 낡았을 뿐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2032년 지금의 야구장은 첨단 돔구장으로 변신하고 체육관도 훨씬 쾌적한 시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런 장밋빛 미래에 앞서 당장 내년부터 시작될 ‘유랑의 세월’이 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서울시는 잠실 주경기장을 야구장으로 개조해 대체 구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만8000석 규모로 축소된 관중석과 공사 현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접근성 문제는 팬들에게 작지 않은 고역이 될 것이다.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시즌 동안, LG와 두산 두 구단은 집 없는 서러움을 견디며 버텨야 한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 체육관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1년간은 잠실학생체육관을 서울 SK와 서울 삼성이 함께 쓰지만 학생체육관 역시 그 뒤에는 철거에 들어가기에 그 다음 행보을 두고 고민이 많다.
대체 구장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 더 걱정되는 점은 ‘기억의 단절’이다. 가까운 예로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지면서 아직도 그곳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나마 동대문보다 낫다고 할 것은 잠실은 그 자리에 대체 경기장이 생긴다는 점이다. 대체 구장 운영 기간 동안 팬들이 느낄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실이 품어온 서사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잠실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스포츠가 걸어온 길 그 자체였다. 이제 그 뜨거웠던 역사를 뒤로하고 잠시 긴 휴식기에 들어가는 잠실을 향해 마지막 경의를 표할 시간이 다가온다. 곧 헤어지지만 우리의 추억을 그대로 담은 채 더 멋지게 돌아오길 기대하며 잠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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