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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안성기, 하늘의 별이 되다… 향년 7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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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05 09:48:43 수정 : 2026-01-05 13:48:43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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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 인사를 하는 안성기. 연합뉴스

고인은 다섯 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후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짧은 공백을 제외하고 평생을 영화와 함께했다. 말 그대로 한국 영화사의 흐름과 생애를 나란히 한 배우였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충무로의 영화 기획자였던 부친 안화영씨가, 친구인 김 감독이 급히 아역 배우를 찾자 고인을 데려간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양주남 감독의 ‘모정’(1958)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연기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역 시절에만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1959)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진학 후 학업과 군 복무(ROTC)로 약 10년간 스크린을 떠났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그는 전공을 살려 현지 취업을 준비했으나 베트남 패망으로 계획이 무산됐다. 대학 졸업 후 막막한 취업준비생 시기를 보내던 그는 1977년 김기 감독의 영화 ‘병사와 아가씨들’를 통해 성인 배우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다. 아역 시절의 명성은 잊힌 채, 무명에 가까운 신인 배우로 다시 출발했다.

 

전환점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었다. 한국식 자본주의와 급속한 도시화의 문제가 표면화된 1980년대 초,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고인은 어리숙한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연기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1980∼90년대 한국영화사는 배우 안성기를 빼고 논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당시 젊은 감독들에게 고인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2023년 4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안성기가 미소 짓고 있다. 뉴스1

배창호 감독과는 콤비로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여러 성공작을 만들었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태백산맥’(1994), ‘축제’(1996) 등에서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8)을 비롯해 이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정지영 감독과는 ‘남부군’(1990), ‘베를린리포트’(1991), ‘하얀 전쟁’(1992) 등 사회성 있는 영화에 함께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 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운 그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로 연기 영역을 확장했다. 배우 박중훈과 함께 부패 경찰을 연기하며 코미디 장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박중훈과는 박광수 감독 영화 ‘칠수와 만수’(1988)를 시작으로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2006)까지 명콤비로 사랑받았다.

 

그는 역대 첫 천만 영화인 ‘실미도’(2003)의 주연으로도 기억된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를 시작으로 주연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형사 Duelist’(2005), ‘화려한 휴가’(2007), ‘7광구’(2011), ‘부러진 화살’(2012), ‘화장’(2015) 등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주연작의 비율은 줄었지만,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배우이자 ‘국민 배우’ 자리를 지켰다. 

2017년 4월 한국영상자료원이 주최한 안성기 데뷔 60주년 특별전 개막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성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차지했다. 논란이나 스캔들 없이 절제된 삶을 살아온 그는 갈등 상황에서 ‘중재와 조율의 달인’으로 정평이 났다. 각종 광고·공익 캠페인에서도 트레이드 마크인 주름진 환한 미소로 ‘믿을 수 있는 얼굴’이라는 이미지를 전하며 사랑 받았다. 

 

그는 2020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으나 투병 중에도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에 출연하며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병마를 공개했고, 이후에도 2023년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고(故) 강수연 1주기 행사,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고인은 또 2000년부터 스크린 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고,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 비상대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영화계의 주요 사안에도 나서며 한국 영화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데 힘을 보탰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수석부집행위원장, 신영균문화재단 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인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신입 회원으로 선출됐다. 유족으로 아내 오소영씨(조각가)와 아들 아들 다빈·필립씨 등이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명예장례위원장은 신영균이며, 배창호 감독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이갑성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한국영화인협회 양윤호 이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배우 이정재,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를 맡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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