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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음 병든 소방관… 10명 중 1명 “외상사건 15회 이상 경험”

입력 : 2025-12-23 17:54:35 수정 : 2025-12-23 21:37:28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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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

사망 등 경험자 5년來 최고치
2024년 10.5%로 줄었다 재증가
6.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쟁 경험자에 준할 만큼 심각”

전문가 심리상담 이용은 소극
직업 특수성 고려한 관리 시급

소방청이 올해 실시한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외상 사건을 15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률이 5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자살 같은 외상 사건을 많이 겪을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정작 적잖은 소방관들이 자신의 마음 건강을 돌보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분당서울대병원의 2025년도 전국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 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효 응답자 6만1517명 중 11.2%인 6883명이 조사 시점(3월4일∼4월11일) 기준 최근 1년간 외상 사건을 15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21년 10.2%에서 2023년 10.7%로 늘었다가 지난해 10.5%로 줄었으나 다시 늘었다. 최근 1년간 평균은 6회로, 담당 직무별로는 구급이 14.5회, 구조가 6.3회로 평균치를 웃돌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상 사건 내용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폐 소생술을 하거나 완전 심정지가 됨’(27.8%·다중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살자 시신 수습’(25.6%), ‘부패해 냄새가 심하게 나는 시신 수습’(20.6%), ‘언론에 보도된 안전사고 관여’(16.8%), ‘1~4명이 사망한 교통사고’(16.0%) 순이다.

 

PTSD 유소견자 비율은 6.3%로 전년(7.2%)보다 감소했다. 치료 필요군이 4.4%, 관리 필요군은 1.9%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PTSD 치료 필요군의 증상 수준이 ‘전쟁 경험자’에 준한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자살 위험성이 있는 자살 유소견자(4.7%), 우울 유소견자(5.8%), 문제성 음주 유소견자(24.9%)도 전년보다 줄었다. 수면 문제 유소견자(28.0%)만 전년(27.7%)보다 소폭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40대 소방관의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40∼44세에서 PTSD(7.4%), 우울(7.2%), 수면 문제(31.3%) 유소견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45~49세에선 자살(6.0%) 유소견자 비율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소방관의 경우 일반적인 중년기 스트레스에 더해 10여년간 축적된 외상 경험의 누적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라며 “소방관 정신 건강 관리의 핵심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교대 근무 형태별로는 3개 조로 나눠 9일 주기로 2교대로 근무하는 ‘3조 2교대(9주기)’가 소방관 정신 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1년간 외상 사건 경험 빈도가 평균치의 8배가 넘는 48.7회에 달했다. 다만 소방청 관계자는 “가장 일반적인 교대 근무 형태는 오전 9시부터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당비비(당직-비번-비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 응답자들의 교대 근무 형태는 3조 1교대(당비비)가 4만5881명으로 대부분이고, 3조 2교대(9주기)는 6명에 그쳤다.

 

사정이 이런데도 응답자 79.7%는 ‘긴급 심리 지원’ 이용 경험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긴급 심리 지원은 정신 건강 전문가가 대형 재난이나 충격적 현장을 경험한 소방관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개입하는 것이다.

 

다만 응답자 58.7%가 ‘찾아가는 상담실’을 이용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찾아가는 상담실은 상담사가 소방서, 119안전센터 등을 방문해 맞춤형 상담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대체로 소방관들은 스스로 마음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찾아가는 상담실을 이용하지 않은 이유, 이용 경험이 있으나 주저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으로 ‘마음 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 없다’(55.0%)가 꼽혔다. ‘마음 건강 문제로 어려움은 있지만 전문적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16.7%)는 그 뒤를 이었다. 특히 ‘4대 질환’인 PTSD·우울·수면 문제·문제성 음주 치료 필요군에서도 두 응답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소방관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담당 직무, 근무 기간 등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며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인식 개선으로, 조직 문화 개선과 연계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극한 상황에서 타인을 구조하는 직무 특성상, 강인함과 자립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가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적 약점으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연구진은 “조기 개입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더 심각한 문제를 예방하고 업무 수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조직 차원에서 적극 알려야 한다”면서 “특히 관리자 교육을 통해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을 장려하고 도움을 구하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마음 건강 설문 조사 응답자들의 담당 직무는 화재 진압이 1만8505명(30.1%)으로 가장 많다. 이어 구급(1만3704명·22.3%), 행정(1만2059명·19.6%), 화재 운전(7820명·12.7%), 구조(5578명·9.1%) 등 순이다. 성별은 남성 5만5307명(89.9%), 여성 6183명(10.1%)이다. 평균 근무 기간은 11.9년, 평균 연령은 40세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권칠승 의원은 “마음 건강 위험 신호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지원 제도가 충분히 이용되지 않는 구조 자체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며 “강인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에서 마음 건강 문제가 개인 책임이나 약점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제도와 인식 모두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의원은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개입과 교대 근무 개선, 전문 심리 지원의 실질적 접근성을 높이는 공적 심리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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