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민족주의 결합 중화주의로 복귀
시진핑 1인 체제로 정책적 균형 상실
美·유럽 등 中 첨단산업에 경계의 시선
산업 구조조정·실업 해소 ‘발등의 불’로
中, 韓·美동맹 견고하기 때문에 韓 우대
이재명정부, 할 말은 하는 원칙 지켜야
“중국이 거대한 문명성을 살리지 못하고 과도한 중화주의, 민족주의의 협소한 시야에 빠졌다. 문명성을 잃으면서 중국의 복잡한 문제가 더욱 얽혀 들어가고 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이 강조하는 중국 이해의 키워드 중 하나가 ‘문명’이다. “중국은 일개 국민국가(national state)가 아니라 거대한 문명과 같다. 유럽과 비교하면 면적은 960만㎢로 유럽연합(EU)의 400만㎢보다 훨씬 크다.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체(1018만㎢)와 거의 똑같을 정도로 광대하다. 유럽을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아닌, 다양한 측면이 포함된 문명으로 파악하는 것처럼 중국도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문명이라는 것이 정상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작금의 중국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다양성을 장점으로 하는 문명성·세계성의 상실과 중국 고래(古來)의 대일통(大一統) 사상과 연결된 중화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의 지나친 경도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문명성과 함께 중국인의 의식·행동 양식 기저에 깔린 ‘전쟁’과 ‘담’도 중요 키워드다. 전화(戰禍)가 일상인 땅에서 생존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가(兵家)적 행태와 벽을 쌓아 내외를 구분하는 폐쇄적 사고 구조가 만들어졌다. 문명성 쇠퇴와 전쟁·담이 현대 중국을 파악하는 씨실과 날실인 셈이다.
유 소장은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관련, “중국을 잘 안다는 자만심이나 전통적 친연성(親緣性)을 가지고 논어, 맹자만 읊조린다”면서 “중국 스스로 주장하는 정체성, 중국의 레토릭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 생활 22년의 유 소장은 홍콩 유학, 중앙일보 대만특파원, 중국특파원 등을 거쳐 종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근 출간한 ‘차이나별곡-중국문명의 그늘’ 등 중국 관련과 백선엽 예비역 대장 관련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조선일보에 한자와 중국에 관한 칼럼을 집필 중이다.
―중국의 문명성 상실은 시진핑 시대의 특징인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공산당 엘리트의 ‘집단 지성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나, 돈의 힘이 지배하면서 인민 대중은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믿지 않게 됐다. 공산주의를 대체할 이데올로기적 조정이 필요하자 공산당 엘리트들은 재빨리 중화주의를 선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상징적 무대였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중화주의로의 복귀로 나타났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시진핑이고, 레토릭으로 등장한 것이 중국의 꿈, 즉 중국몽(中國夢)이다.”
―시진핑 시대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정책적 균형을 잡아가던 노련함을 상실한 것 같다. 결국 이는 시진핑 1인 지배 체제의 원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제의 통치·지배 대(對) 신민(臣民)의 복종·굴종의 조응 구조였다. 덩샤오핑 이래 집단지도체제의 탄력적 의사 결정구조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황제 대 신민의 구조가 부활한 아주 경색된 상황이다. 코로나19 봉쇄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등 어떤 정책의 오류가 있을 때 합리적인 조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문제점이다.”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은 놀랍다.
“중국의 경제 순환이 첨단산업에 집중되면서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다.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고용, 즉 실업 해소다. 중국이 첨단산업에 집중하면서 고용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수출, 해외 무역 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다 사라지는 국면이다.”
―한국 입장에선 첨단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해 비상이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 몇 가지 중국이 두드러진 분야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사실 한국을 압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이 중국의 경쟁 상대는 아니다. 중국 굴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중국의 첨단산업도 과잉 생산 등 나름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선택과 집중으로 단기간에 급격히 성장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미국의 장벽이 높아지고, 유럽이 블록화하면서 중국 첨단산업의 출로가 막히고 있다. 중국이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뚫고 구조조정이 된다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적으로 보나.
“중국의 중화주의를 미국, 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도 경계의 시선으로 보고 있어 순조롭게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 첨단산업으로의 과도한 선택과 집중은 인민 대중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 아주 냉정하고 가혹한 전략가나 구사할 수 있는 정책이지 인본적 내용은 아니다. 중국 당국은 말로만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 인민을 위해 일한다)’라고 하는 듯하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수치와 통계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고 역사 이래 중국이 쌓은 시간의 깊이 속에서 이어져 온 거대한 흐름을 봐야 전체적 모습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가 태동한 백그라운드에 등장한 대일통과 축선(軸線)도 그 하나다.”
―대일통과 축선이란.
“대일통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이념적·정치적 개념이다. 황제 아래 천하 질서가 통합되는 국가 상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로부터 한나라 왕실에 이어지는 적통 중심의 계보를 축선으로 삼아 주변의 이족(異族)을 수렴하는 대일통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대일통은 중화주의의 기초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을 축선의 연장선상으로 사고하면서 중화주의로 수렴하는 강력한 통치 이데올로기를 발산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중국이 스스로 주장하는 레토릭에 빠져 있다. 500년 조선 왕조가 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비는 중국에서 엄청난 영웅으로 주장되지만, 우리는 황제가 되기 위해 수백만을 죽였던 전범으로 봐야 한다.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가 중국공산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대일통의 현란한 레토릭은 거짓말이다. 중국은 통일보다 분열이 훨씬 길었다. 분열의 역사 속에 사실 중국 문명의 진정한 면모와 다양성이 있다. 중국의 장단(長短), 명암을 제대로 봐야 한다.”
―중국의 장단, 명암이란.
“중국은 오래된 의식 구조와 한자로부터 혹독한 ‘가국(家國)’ 개념을 만들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대표적 덕목에서 볼 수 있듯이 혈연이 정치로 연결되는 것이 가국 체제다. 가국 개념을 키웠던 요소들이 있다. 전쟁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가혹한 전쟁을 많이 겪은 땅이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사고가 예민하다. 이미 3000여년 전에 바둑이라는 워 게임(War Game)을 만들었다. 장기, 마작도 워 게임이다. 한자도 우리는 중국의 서사 구조에 말려 공맹(孔孟) 관점에서 본다. 실제 중국인의 의식 구조에는 삼국지연의, 수호전이 있다. 권모술수, 배반, 하극상이 삼국지연의의 세계이고, 인육만두가 등장하는 것이 수호전의 세계다. 사실 이런 게 중국인의 진짜 정신세계다. 1970년대, 80년대 중국 콘텐츠의 핵심이 왜 무술 영화였겠는가. 모략 꾸미기, 뒤통수 치기, 등 뒤에 칼 꽂기 등 중국이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병법의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도 원래 중국에서는 북방민이 침입하는 계절을 의미했으나 우리는 독서를 생각한다.”
―중국인의 의식구조 특질은.
“전쟁의 땅인 중국은 성을 쌓는다. 개인은 높은 담, 벽을 세우고, 왕조는 장성을 쌓는다. 중국 국가(國歌)에도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新的長城)을 쌓자’라는 부분이 있다. 남중국해에도 엄청난 해상 군사 장성을 쌓았고, 동중국해, 우리 서해에서도 그러려고 한다.”
―이재명정부의 대중 정책은.
“전체적으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조심성이 돋보인다. 그런데 중국은 할 말을 해야 두려워한다. 만약 우리가 할 말을 안 하고 유화적으로 나가면 중국은 노련한 모략으로 대응할 것이다. 모략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떳떳한 승부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중국을 돈 벌기 위한 비즈니스 관점에서만 보지만, 할 말을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중국이 한국을 우대하는 것은 한국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한국 너머에 있는 한·미 동맹의 견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로서 한자 교육론을 어떻게 보나.
“한자를 전면 수용해 ‘성현 말씀’ 하는 식으로 이전 교육 형태로 돌아가면 다시 조선 왕조, 성리학 시대로 후퇴한다. 한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정수를 제한적으로 흡수하는 형태라면 우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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