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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선생님 된 마을 어르신… 농촌 사회 활력 채운다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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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12 06:00:00 수정 : 2025-12-11 21:36:08
세종=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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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시대 대안 부상한 ‘사회적 농업’

농식품부 ‘농촌돌봄농장·공동체’ 운영
노인들, 반찬 직접 만들어 주민에 나눔
판매 등 수익 창출 통한 일자리 연계도
아이들에 텃밭 가꾸는 법 교육도 나서

농업 활동 기반 취약계층에 돌봄 제공
농촌 어르신 자존감·사회성 제고 효과
공동체선 먹거리 배달 등 서비스 해결
영주·횡성·홍천·김해 등 전국 곳곳 성황
#1. “뒷방 늙은이가 뭐를 안다꼬.”

 

경북 영주 장수면 성곡리는 주민 26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주민 절반이 65세 이상 어르신인 이곳에선 입버릇처럼 “이러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푸념이 쉽게 들렸다. 1991년 이곳에 터를 잡은 권미향씨는 어르신들을 위해 2019년 농촌돌봄농장 ‘새오름’을 열었다. 마땅한 문화시설이 없는 이곳에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일원으로 살아가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성곡리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할매 셰프되다’는 새오름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공동텃밭에서 재배한 제철 농작물로 반찬을 만들고 주민들과 나누는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를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할매 반찬’을 수익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 중이다.

 

#2. 강원 횡성의 작은 마을에선 매주 화요일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활기차다. 노인 비중이 높은 이 마을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박창현씨가 운영하는 농촌돌봄농장 ‘늘봄’은 마을 어르신들을 ‘선생님’으로 초빙해 아이들에게 텃밭 가꾸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농촌에선 노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문화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늘봄을 통해 흙냄새를 맡아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평생 농사를 한 어르신들에게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선생님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 이곳 어르신들은 석 달간의 과정을 거쳐 원예심리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선생님 소리를 듣기에 자격이 부족하지 않다. 늘봄을 통해 어르신들은 더 건강해지고, 아이들은 생명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강원 횡성의 농촌돌봄농장 '늘봄'은 주민들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텃밭 가꾸는 법을 가르치는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노인 인구 1000만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농촌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도시와 달리 복지시설이나 의료시설과 거리가 멀고, 소통할 수 있는 대상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평생 생업으로 삼아온 농업을 기반으로 돌봄 문제를 해소하는 ‘사회적 농업’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업을 통해 농촌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더 나아가 취약계층을 돕거나 경제활동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촌돌봄활성화지원사업은 크게 ‘농촌돌봄농장’과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농촌돌봄농장은 농업 활동을 기반으로 취약계층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수익을 창출해 고용과 연계짓고 있다.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는 농촌에서 부족한 빨래나 식사지원과 같은 생활 서비스를 주민들이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다. 공통적으로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농촌에서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 나누는 것이다.

 

농촌돌봄농장의 대표적인 곳으로는 전남 고흥의 ‘담우’를 들 수 있다. 고흥은 예로부터 취나물이나 곤드레 등의 나물을 재배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나물이 고흥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지만, 이제는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재배를 포기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담우는 고흥에서 재배한 나물을 보관하기 쉬운 장아찌로 개발했다. 5개 농가와 함께 취, 곤드레, 방풍, 부지깽이와 같은 나물을 재배했고, 정규직 6명 중 4명은 어르신을 채용했다. 이들은 경제활동을 통해 자존감과 사회성을 키우고, 매출의 일부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후원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주여성과 협업을 강화해 문화나 음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업을 평생 ‘노동’으로 여기던 이곳 주민들이 이제는 ‘놀이’로 여기며 삶의 활력으로 느끼고 있다.

경북 영주의 농촌돌봄농장 '새오름'은 지역 어르신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주민들이 모여 향초를 만드는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로는 강원 홍천에 소재를 둔 ‘숲속마당협동조합’이 있다. 이곳은 2020년부터 농촌과 산촌의 체험, 교류, 치유를 키워드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 구성원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29년째 귀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맺게 된 인연이 이제는 ‘농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사이로 이어졌다. 이곳 조합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생태텃밭교실’과 귀촌인 대상의 ‘생태농장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지역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도시락 배달’과 ‘이·미용 서비스’, ‘찾아가는 약손 서비스’ 등을 제공 중이다.

 

경남 김해의 ‘김해시농촌공동체활성화협의회’는 전화 한 통으로 빨래와 먹거리 등을 제공하는 농촌돌봄콜센터를 운영 중이다. 도시의 배달앱처럼 여러 서비스를 전화만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빨래 배달’은 어르신들의 빨래를 수거한 뒤, 세탁 후 다시 배송하는 서비스다. 이불과 같은 대형 빨래를 세탁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먹거리를 만들어 배달하는 ‘찾아가는 건강 먹거리 배달’, 장애인 가정을 위한 텃밭 운영 프로그램인 ‘진진돌봄 텃밭 농업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농촌돌봄농장에는 연간 최대 5500만원,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에는 6900만원을 최대 5년간 지원하고 있다. 2025년 지원 중인 전국의 농촌돌봄농장은 97개소,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는 40개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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