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간이오” - 회개로 열린 성령의 문
1907년 1월 14일 밤, 평양 장대현교회. 6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저녁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길선주 목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바로… 아간과 같은 죄인이라오!”
그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고, 눈에서는 회개와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친구를 속이고, 믿고 맡긴 재산을 가로챘소. 내가 죄인이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집회에 은혜를 내리지 아니하시나이다.”
◆눈물의 강을 지나 탄생한 불길
길선주 목사의 고백에 예배당 안은 절망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때 한 여인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온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청일전쟁 때 제가… 제 아이를 죽였습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어린 생명을 제 손으로 거둔 죄. 12년 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비밀이었다. 여인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려 통곡했다. 예배당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려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도둑질, 간음, 시기, 미움, 사기. 은밀한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선교사 윌리엄 블레어는 이렇게 기록했다.
“마치 건물의 지붕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눈사태처럼 우리 위에 쏟아져 내린 것 같았다.”
이날 밤 평양에서는 회개와 성령의 불길 속에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났다. 이것이 ‘한국의 오순절’이라 불리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다.
이 불길의 씨앗은 4년 전 원산에서 뿌려졌다. 1903년 여름, 로버트 하디는 깊은 번민에 빠져 있었다. 13년간 조선에서 선교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는 교회의 더딘 성장을 한탄하며 신도들의 영적 각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령의 역사는 먼저 그의 마음을 찔렀다. 설교 중에 하디는 자신의 교만을 마주했다. 백인으로서의 우월감, 의사로서의 오만, 조선인을 향한 편견. 그는 용기를 내어 신도들에게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진심 어린 고백이 신도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하나둘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 회개의 불씨가 번져나가 마침내 1907년 평양에서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당시 조선은 을사늑약(1905년)으로 외교권을 빼앗겨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 속에서 한민족은 영적 각성을 경험했다. 구약 시대의 고난 받는 이스라엘처럼,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하늘을 더욱 간절히 찾았다.
◆성령의 물결, 민족을 하나로 묶다
길선주의 고백 후 여러 사람이 기도하려 하자, 인도자 그레이엄 리 선교사가 말했다.
“그렇게 기도하고 싶다면, 모두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 순간, 600명의 기도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블레어는 이를 “많은 물이 떨어지는 소리, 하나님의 보좌를 치는 기도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혼란이 아니었다. 소리와 영의 광대한 화음이었다. 한국 교회의 특징인 강렬한 ‘통성기도’가 바로 이날 탄생했다. 이 영적 체험이 서로 다른 신앙적 배경을 가진 조선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묶었다.
150여 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제1차 대각성을 떠올려보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중부 식민지의 독일계 이민자, 남부의 스코틀랜드계 장로교도들은 순회 부흥운동을 통해 최초의 범(汎)아메리카적인 공동 경험을 공유했다. 이 영적 각성 운동은 지리적·교파적 경계를 초월하여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 이들은 스스로를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God’s chosen people)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 독립혁명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평양 대부흥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침탈 아래 고통 받던 한국인들은 성령 체험을 통해 구약성서 속 이스라엘 민족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압제받는 식민지의 현실이 바빌론 포로기의 고난과 겹쳐 보였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싹텄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박해를 견디고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 곧 ‘동방의 이스라엘’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자각은 식민지 압제에 맞서는 영적 저항력을 제공했다.
성령 체험을 통해 형성된 신앙과 민족의식의 결합은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부흥운동을 통해 영적으로 갱신된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민족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렸고, 이것이 비폭력적 독립운동의 영적 배경이 되었다.
◆“조선에 군함 대신 성령을 보내셨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이자 무교회주의 창시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평양 대부흥의 소식을 듣고 깊이 감동했다. 그는 놀라운 증언을 남겼다.
“조선은 비록 정치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잃었지만, 그 대신 영적인 자유와 독립을 획득했다. 하나님은 조선에 군대나 군함 대신 더 강한 성령을 주셨기에, 조선은 행복한 나라다.”
우치무라는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이 한반도에 깊이 뿌리내려 동양 전체에 전해질 것이라 예견했다. 초대교회 유대 기독교인들이 로마 세계에 복음을 전파했듯이, 한민족이 동양의 영적 중심이 될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실제로 부흥운동 이후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게 되었다. 부흥 전 술과 기생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평양이 ‘거룩한 도성’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1905년 3만7000여 명이던 조선 개신교 신자 수는 1910년 20만 명을 넘어섰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흥을 경험했다.
종교개혁 이후 400년, 하늘부모님은 신부 된 교회를 찾아 나오셨다. 루터와 칼뱅을 통해 진리를 회복하시고, 경건주의자들을 통해 영성을 되살리셨으며, 대각성 운동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그 긴 여정의 끝에서 하늘부모님은 마침내 한반도에서 순수한 교회를 출발시키셨다. 한국 교회는 독생녀를 맞이할 영적 토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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