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비특혜원산지’ 적용
中배추로 韓서 김치 담가도 중국산
수출기업에 체크포인트 맞춤 제공
탈세·밀수… 무역범죄도 ‘기승’
수익 은닉 등 경제범죄 수사권 필요
가상자산 정보 공유 법 개정해야
K푸드·뷰티 원산지 증명 간소화
한·미 관세협상의 팩트시트가 공개된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만난 이명구 관세청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달라지는 ‘비특혜원산지기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수입한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수출하는 경우 기존에는 ‘한국산’ 김치로 판매할 수 있었지만, 관세협상에 따라 이제는 ‘중국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의 관세협상이 큰 틀에선 마무리됐지만, 수출 상품 건건마다 적용되는 원산지기준과 품목분류번호(HS CODE)에 대해 여전히 살펴볼 부분이 많다. 품목 분류에 따라 적용받는 관세율이 천차만별인 탓에 수출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혼동이 크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지금까지 한·미 관세협상이 정책 부문에서 논의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집행에 대비할 때”라며 “미국 관세청과도 긴밀히 협력해 선순환 구도가 되도록 역할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최근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와 자금세탁이 급증함에 따라 가상거래자산분석과를 신설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미 관세협상이 마무리됐다. 이제는 관세청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기업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지난 9월 대미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많은 기업이 달라지는 관세정책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고 답했다. 특히 수출품이 어떤 품목으로 분류되는가는 기업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큰 틀의 협상이 마무리됐지만, 수출품이 어떻게 분류되는지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기업들이 어떤 품목에서 관세가 얼마나 부과되는지 알 수 있도록 한·미 품목번호 연계표를 제작해 공유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달라지는 원산지기준에도 민감할 것 같다.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특혜원산지기준’에 따라 세율이 결정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비특혜원산지기준’을 적용한다. 원산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는 것으로, ‘한국산’에 대한 적용 범위가 바뀔 수 있다. 가령 배추김치의 경우 (소금에 절이는) ‘실질적 변형’이 중국에서 이뤄졌다면, 그것이 한국을 거치더라도 중국산이라는 것이다. 산업군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런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부분에서 수출기업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미국 비특혜원산지판정 대응 체크포인트’를 제작해 공유하고 있다. 관세청 본부세관별로는 수출기업지원센터를 통해 기업들에 상담을 해주거나, 현장방문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역 관련 범죄도 늘고 있다.
“무역범죄는 흔히 밀수나 고의로 관세를 내지 않는 관세포탈을 떠올리지만, 최근에는 ‘뺑뺑이 무역’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뺑뺑이 무역은 수출입 실적을 부풀려 상장을 시도하거나 기업보조금을 편취하는 경제범죄다. 이 같은 유형의 범죄 단속 건수는 2021년 2894건에서 지난해 9062건으로 급증했다. 관세청이 무역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갖고 있지만, 경제범죄로 확대되는 경우는 사건을 인지하더라도 수사가 불가하다. 현재로서는 검찰 송치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제공하거나 수사관을 파견하는 간접 지원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사가 장기화하기 쉬운 데다, 자칫 증거인멸이나 범죄수익 은닉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관이 무역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지한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마약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다.
“마약 밀수를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세청은 대검찰청과 국방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협력해 대응하고 있다. 마약 우범자에 대한 신변을 사전에 살펴보고, 이들을 통한 밀반입 경로는 통관검사를 강화하는 식이다. 현재는 태국, 베트남, 네덜란드 등 6개국과 합동단속을 진행 중인데, 내년에는 캐나다, 캄보디아, 라오스 등 9개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마약단속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와 라만분광기 등의 장비를 공항과 항만에 배치할 계획이다.”
―정부 대응에도 마약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마약 밀수가 늘어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고 본다. 관세청이 국경의 최일선에서 공급을 차단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수요를 꺾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청소년층을 중심으로도 수요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 잘되는 약’으로 불리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다. 원래는 환자들을 위한 것인데, 이 약의 각성효과 때문에 청소년층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수요가 늘어난 데에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마약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마약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들은 그런 노출에 취약하지 않나.”
―마약범죄의 고도화와 함께 거래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범죄수익금을 전달하는 ‘환치기’가 주된 수법이었다면, 이제는 가상자산을 통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5년간 10조원 규모의 환치기 범죄를 단속했는데 이 중 80% 이상이 가상자산,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거래였다. 예전처럼 몸에 돈을 숨겨서 반출하는 식으로 범죄수익을 운반하지 않는 것이다. 가상자산을 통한 환치기라도 거래소를 통해 이뤄지면 적발이 어렵지 않은데, 거래소 밖에서는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관세청이 관련 단속을 진행하면서 노하우가 쌓인 부분도 있지만, 거래와 관련한 자료 등을 받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내거래소뿐 아니라 해외거래소를 통해서도 자금이 오가는데, 여기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또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가상거래자산분석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관세 체납액이 증가 추세에 있다.
“올해 10월 기준 체납액이 2조1335억원에 달한다. 체납자, 체납액 모두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농산물 범칙사건에서 발생하고 있다. 장기 체납은 대부분 고액 추징 대상자가 폐업했거나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다. 다만 고의적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내년 3월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12월까지 ‘체납 특별 정리기간’을 운영 중인데, 납부하는 체납자에는 분할 납부나 징수 유예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체납자 은닉재산 추적을 강화할 방침이다. 관세청에서 주요국으로 파견 나간 관세관들을 통해 해외로 도피한 체납자 추적에도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최근에는 K푸드나 K뷰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관세청 차원에서도 살필 부분은 무엇이 있나.
“최근 무역장벽이 강화되는 추세에도 K푸드와 K뷰티가 선전하고 있다. 관세청은 우리 기업들이 FTA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K푸드와 K뷰티 제품을 중심으로 원산지증명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K푸드의 경우 원산지 간편인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농수산물품권리원의 인증서로 간편 대체하는 방식이다. 김이나 전복, 쇠고기와 같은 1245개 품목이 이 같은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K뷰티의 경우에도 립스틱 등의 6개 품목에 대해 원산지 간이확인 품목으로 지정했다. 기존에는 한국산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8가지 서류를 제출했지만, 이제는 국내 제조확인서 1가지로 대체할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 AI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관세청은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관세청의 비전으로 ‘AI로 공정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을 내걸었다. 관세청이 보유한 데이터의 용량만 446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AI를 활용하면 행정 비용이 절감되는 것뿐만 아니라 수입신고 심사나 환급 등의 민원 업무에도 속도가 올라가 국민 편의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가령 AI로 위험도를 분석해 고위험 화물을 집중 검사하면 일반 화물의 통관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이미 관세청은 2018년부터 AI 기술을 적극 도입해 검사대상 등을 선별해내고 있다. AI를 통한 위험 적발률은 기존의 전산 선별 방식 대비 1.3배가량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해외직구가 늘면서 상담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데, 관련 서비스의 품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명구 관세청장은…
●1969년생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6회 ●세계관세기구(WCO) 파견 ●대구본부세관장 ●서울본부세관장 ●부산본부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관세청장(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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