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박2일 일정으로 몽골을 방문했다. 푸틴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몽골은 ICC 설립에 관한 로마 협약 가입 당사국으로 ICC에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몽골 정부는 푸틴을 체포하기는커녕 국빈으로서 극진히 대접했다. 화가 난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는 푸틴을 겨냥해 “몽골이 처한 지정학적 취약성을 십분 악용해 몽골 측에 굴욕을 안겼다”고 쏘아붙였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낀 것은 물론 바닷길로의 접근마저 차단된 내륙국 몽골의 처지를 지적한 셈이다. 몽골로선 이 두 나라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몽골이 훨씬 더 큰 두 이웃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는 입장은 이해한다”고 밝혔다. 내륙국의 비애에 공감한다는 뜻일 것이다.
지구상에는 몽골을 포함해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40개쯤 된다. 그중 남미의 볼리비아는 특이하게도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 나라는 독립 당시만 해도 태평양에 면해 있었으나, 19세기 후반 이웃나라 칠레와의 전쟁에서 져 해안가 영토를 뺴앗기고 내륙국이 됐다. ‘언젠가 바다를 되찾을 날이 올 것’이란 믿음 때문에 해군에 투자하는 것이다. 볼리비아 해군의 훈련은 페루와의 접경 지대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에서 이뤄진다. 40여개 내륙국들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카자흐스탄에도 해군이 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나라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흔히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로 불리는 카스피해(海)와 맞닿아 있다. 바로 이 카스피해가 카자흐스탄 해군의 존재 이유이자 활동 무대다. 연안 순찰용 함정들로만 구성된 ‘미니’ 해군이지만, 그중에는 한국에서 제공한 함정도 있다고 하니 흥미롭다.
작은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에는 내륙국이 많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몰도바 그리고 헝가리 등이 그렇다.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1990년대 초 연방 해체 후에도 둘이서 연방 체제를 유지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신(新)유고 연방’으로 불렸다. 2003년부터는 연방 구성원의 자치권을 대폭 늘린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2006년 바다와 면한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선언하며 국가연합이 깨졌다. 그간 몬테네그로를 통해 해양과 연결되었던 세르비아는 이제 내륙국의 운명을 감수해야 했다.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의 열강으로서 영토가 지중해까지 뻗어 있었다. 그러나 1차대전 패전의 결과 제국이 해체되며 분리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둘 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국이 되고 말았다.
지난 7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헝가리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에도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천연가스의 74%, 석유는 무려 86%를 러시아에서 수입할 만큼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산(産) 석유·가스를 구매하는 국가들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히자 헝가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날 만남에서 오르반은 헝가리가 내륙국이란 점을 십분 활용했다. 해상을 통한 에너지 수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거래선을 바꾸면 물류비가 폭증한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회담 후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헝가리는 크고 휼륭한 나라이지만 바다가 없고 항구가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백악관은 헝가리의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헝가리는 내륙국’이란 오르반의 논리가 트럼프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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