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말해도 바뀌는 게 없어"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1일 오후 1시께 찾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이곳에서 20년째 살았다는 주모(64)씨의 방문을 열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밀려 나왔다.
이날 기상청이 예보한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였으나 주씨의 방 내부 온도는 40도를 넘어섰다. 햇볕에 달궈진 슬레이트 지붕이 끊임없이 복사열을 내뿜는 탓이다.
방 한편에는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보였으나 무더위를 물리치기엔 역부족이다. 주씨는 "오늘 같은 날은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밖에 나오지 않아 더 덥다"며 "무더위 쉼터가 근처에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다리가 아파 쉽게 가기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영등포 쪽방촌 좁은 골목 곳곳에는 더위를 피해 바깥으로 나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덥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주민은 기진맥진한 듯 고개를 젓고 손사래를 쳤다.
더위를 잊으려 인근 공터의 나무 그늘에서 낮잠도 청해보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기 일쑤다. 김동주(51)씨는 부채를 부치며 "올해 여름은 비도 안 오고 더 덥다는데 벌써 이러니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시각 용산구 쪽방촌도 상황은 비슷했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언덕길을 올라가니 인근 공원에서 폭염을 피해 나온 주민 10여명이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혹 복도에 에어컨을 설치한 건물도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다. 이곳에 사는 이태선(65)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에어컨을 달아준다고 해도 집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며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한테 우리 생활이 이렇다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하나도 없고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자신이 과거 살았던 건물을 가리키며 "층마다 주인이 달라 1층은 에어컨이 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에어컨이 없다"며 "주인들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에어컨 설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서도 에어컨 실외기 5대가 보였으나 한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멈춰있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김모(78)씨는 "공동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운 것"이라며 "해마다 뉴스에 나오지만,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폭염은 불편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80대 A씨는 "이렇게 더운 날에는 진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며 "이웃이 한참 지나도 안 보이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무서울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연합>연합>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