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무역구조는 제조업 전반에서 대중국 수입이 늘어난 반면 자동차 등 소수 품목을 중심으로 대미국 수출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은 미국, 수입은 중국’이란 경향성이 커지는 가운데 무역집중도는 주요 6개국 중 가장 높았다. 이는 제조업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심화시켜 경제 안보를 위협하고, 미국 관세정책 표적이 될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거시경제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등 경제 외교와 통상협력을 강화하면서 무역 충격으로 피해를 입는 기업·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성훈 선임연구위원이 1일 발표한 ‘2010년대 이후 무역구조 변화와 경제안보에 대한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 무역은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한 반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대중 무역을 보면 반도체·전자기기, 정밀기기·LCD 등 주력 수출 품목의 실적이 줄며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약 600억달러 규모의 순수출 감소가 발생했다. 대중 수출은 2010년대부터 1300억~1600억달러 박스권에 정체돼 있다. 반면 중간재와 자본재, 소비재 등 제조업 상품 전반에서는 순수입 증가가 일어났다.
대미 수출의 경우 자동차 및 부품, 반도체·전자기기 등의 수출이 늘면서 최근 대중 수출액과 거의 동일한 1300억달러 수준까지 도달했다. 특히 자동차 및 부품은 2021년부터 수출이 급증해 지난해 기준 대미 무역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2012년 대비 지난해 대미 수출 비중은 8.0%포인트, 대중 수입 비중은 6.6%포인트 정도 증가했다.
한국은 무역집중도도 주요국 대비 높았다. 무역집중도가 높을수록 국가의 수출입이 소수의 국가·품목에 집중돼 있음을 의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집중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비중이 우리보다 높은 네덜란드나 제조업 강국인 독일·프랑스보다 높았다.

문제는 이런 무역구조가 각종 위험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대중 수입 확대로 국내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면 경제안보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미래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화학, 석유제품, 1차금속, 전자·반도체 업종에서 중국의 영향이 증가하는 가운데 로보틱스나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서도 중국의 공급망 장악력이 매우 높아 중장기 발전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산 수입품과 경쟁이 심화된 제조업종의 경우 생산과 고용면에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정 선임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중국발 수입 증가로 미국의 제조업 노동자의 실업이 늘고 임금이 낮아졌는데,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가진 우리는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미 수출 증가가 소수 품목에 집중된 점도 부담이다. 무역적자 개선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을 관세정책의 주요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을 크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최근 자동차와 가전제품 그리고 관련 부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거나 예고했는데, 해당 품목에 수출이 집중된 우리나라의 경우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함께 무역의존도가 소수 국가·품목에 집중된 점은 경쟁력 강화를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국내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이에 교역국 다변화를 통해 경제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미·중 외 국가들과 양자 및 다자 무역협정을 더 적극적으로 체결하고, 기존 협정은 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21년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는 CPTPP 가입 추진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협정은 미·중을 제외한 12개국 간 높은 수준의 개방을 표방하고 있어, 미·중 무역의존도 완화와 공급망 안정화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전략산업에 속한 국내외 기업들에게 국내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줌으로써 공급망 내 핵심단계의 생산이 일정 부분 국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생산의 국내화’를 유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면서 “수입 증가나 공급망 붕괴와 같은 무역 충격으로 피해를 입는 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지원 체계를 내실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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