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 금액을 집주인에게 맡기는 대신 일정 기간 주택에 거주하는 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주택 임대 형태다. 영어로도 ‘Jeonse’라고 표기할 정도다.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법률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임차 가구의 40%가 전세인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된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방정책으로 일본인 거류지가 조성되고, 농촌 인구 유입으로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이른바 ‘셋방살이’로 불리는 전세 제도가 태동했다는 게 정설이다.
전세가 보편적 주거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경제 성장기였던 1970년대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집값이 올랐지만, 서민들이 은행 문턱을 넘긴 힘들었다. 정책적으로 산업 육성에 집중하던 시기라 당시 은행은 기업에만 돈을 빌려줬을 뿐 가계 금융은 등한시했다. 집주인으로서는 사글세·월세로는 집을 살 목돈 확보가 어렵다 보니 전세로 내놨다. 고도성장기 시절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만 놔도 이자가 10% 이상 붙었다. 돈 빌릴 곳이 마땅치 않은 서민들은 전세를 선호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일종의 ‘사금융’인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1∼2월 전·월세 신규 거래에서 월세(보증부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이 61.4%로 집계됐다. 2021년 41.7%에서 지난해 57.5%로 급격히 늘어나더니 마침내 60%를 넘어섰다. 4년 만에 20%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빌라’로 대표되는 비아파트의 월세화는 가팔라지고 있다. 서울은 76.1%, 지방은 82.9%에 이른다. 지난 2년간 전세 사기 여파에다 예금금리 인하, 부동산 침체가 겹친 탓이다. 전세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세자금 대출을 악용해 갭투자로 전셋값과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은 끊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자칫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서민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는 것도 큰 일이다. 급격한 전세의 월세화는 서민의 주거 선택권을 제한하고 주거비 부담을 키운다.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린다. ‘긁어 부스럼’ 대신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전세 규모를 줄여나가는 연착륙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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