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자 자녀 한시적 체류권 보장 제도
1월까지 1131명 구제… 전체 10% 못 미쳐
까다로운 자격·범칙금 부담에 신청 주저
이마저도 법무부 이달 31일 종료 앞둬
출생 통보제 대상 아닌 미등록 이주아동
최소 1만명 추정… 정확한 수치 파악 불가
“유학생 아냐… 韓서 자란 사실상 한국인
우리 인재로 성장 위해 제도적 발판 필요”
우즈베키스탄 민족 무슬림인 그의 가족은 입국 뒤 출입국 당국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2차례 거절당해 3번째 신청 절차를 밟던 지난해, 한 변호사를 통해 법무부의 구제 조치를 알게 돼 난민 인정의 꿈을 포기하고 법무부에 구제를 신청했다. 올 초 두 동생과 부모님은 체류 자격을 받았다. 무비나씨는 대상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해서다.
학업을 중단한 건 무비나씨 자의가 아니었다. 특성화고 1학년 재학 중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가 공부한 스마트경영과가 없다고 받아 준 특성화고가 없었던 것. 검정고시를 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검정고시는 외국인 등록 번호가 있어야 응시 가능하다.

이제 성인이니 본국으로 가라지만 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가족들이 체류 자격을 받은 뒤에도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다. 부모님이 한 달 반 가까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월세와 공과금 몇 달치가 밀린 상태다.
무비나씨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이어 가고 있다. 언젠가 가족들과 한국으로 귀화하는 게 꿈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도 배우고 공부하잖아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려는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인들은 이해력이 뛰어나잖아요. 외국인을 이해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여느 신입생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진 못했다. 저녁이면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쪽잠을 자야 했다. 부모님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집을 구할 돈이 없었다. 밥은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했고 화장실에서 대충 씻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화하면 괜찮다고 해 막상 찾아가면 안 된다고 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술집에서 겨우 일하게 됐으나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밤새 일하고 늦잠을 자다 강의를 빼먹기 일쑤였다.

그런 A씨는 비자 연장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비자 연장을 위해선 출석률 70%, 평균 성적은 C 학점이 돼야 한다”며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유학생’ 신분이다.
법무부가 지난 3년간 일정 요건을 갖춘 장기 불법 체류, 미등록 아동들에게 체류 자격을 준 한시적 조치인 ‘국내 장기 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 자격 부여 방안’이 이달 31일 종료되는 가운데, 지원 단체들 사이에선 조치를 연장해 상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와 함께 무비나씨 같은 사각지대, A씨처럼 아동이 성인이 된 뒤 문제, 현실적 어려움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사회 통합적 측면에서 미등록 아동을 아우르는 진정한 이민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 1131명 구제…“미등록 아동 최소 1만명”
9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무부가 2022년 2월1일 시행한 장기 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 방안은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6세 미만에 입국해 6년 이상 체류, 6세 이상인 때 입국한 경우엔 7년 이상 체류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아동이 대상이다.
기존 ‘국내 출생 불법 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 대책’보다는 대상이 확대되고 요건도 완화됐다. 이 대책은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체류해 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아동만 대상이었다.
또 교육권 보장 방안은 부모에 대해선 불법 체류 범칙금의 30%를 납부하면 자녀가 고교를 졸업하거나 성년이 될 때까지 체류는 물론 자녀 양육을 위한 체류 자격 외 활동을 허가해 왔다. 그 전엔 많게는 범칙금 전액을 내야 했다.

교육권 보장 방안으로 올해 1월 말까지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아동 1120명이 D-4(연수), 고교를 졸업한 11명은 G-1(기타) 비자를 받았다.
부모는 1467명이 G-1 비자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자녀가 고교를 졸업하거나 성년이 됐는데도 떠나지 않고 불법 체류한 부모는 없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다만 아동이든 부모든 올해 1월 비자를 받은 경우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가 공론화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몽골인 고교생이 학교에서 싸움을 말리다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신원이 조회된 지 4일 만에 홀로 강제 추방됐다. 이 사건은 관련 단체들이 ‘이주 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든 계기가 됐다.
문제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법 체류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동은 출생 통보제 대상이 아니라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2022년 기준 외국인 등록 번호 없이 학적을 생성해 초·중·고교에 다닌 학생이 3000여명이란 교육부 통계만 있을 뿐이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지원 단체들은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이 최소 1만명, 최대 2만명일 것으로 추산한다”며 “교육부 통계 기준 3분의 1, 저희 기준으로는 10%도 체류 자격을 못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간 조치에 대한 홍보가 안 돼 정말 몰라서 신청 못 한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신청 주저하는 부모들…대학 진학 ‘딜레마’
부모들은 신청 자체도 주저한다. 범칙금 때문이다. 법무부가 부모에게만 범칙금 70%를 감면해 30%를 부과하고 있지만 1인당 최고 900만원, 둘이면 1800만원을 내야 한다. 범칙금은 불법 체류 기간에 따라 상이한데 5년 이상∼7년 미만은 2500만원, 7년 이상은 3000만원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의 한시적 조치가 곧 끝나는데도 범칙금으로 낼 돈을 모으느라 신청을 못 하거나, 신청하더라도 범칙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요건 자체에도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장애가 있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입학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 미인가 대안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신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고등학교는 입학을 시켜 주는 게 학교장 재량이라 입학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가족 내 차별 문제도 있다. 자녀가 여러 명이면 누구는 비자가 있고 누구는 없는 문제가 생긴다. 미취학 영유아는 대상이 아니라서다.
이는 건강권과도 맞물린다. 외국인은 체류 자격을 받아야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미등록 영유아가 발생한다. 실제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2023년 긴급 생활비를 지원했던 이주 배경 아동 중 그런 사례가 있다.
불법 체류자이던 우즈베키스탄인 부부는 한국에서 세 자녀를 낳고 취학 연령인 첫째를 위해 빚을 져 범칙금을 냈다. 세 자녀 중 첫째만 체류 자격을 받아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충치가 생겼으나 둘째는 100만원이 넘는 병원비 부담에 제때 치료받지 못해 통증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아동이 고교를 졸업한 뒤 한국에서 지내려면 사실상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고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받을 수 있는 취업 비자가 없다”며 “전문 인력 취업 비자(E-1∼7)는 최소한 전문대를 나와야 받을 수 있고, 비전문 인력 취업 비자(E-8∼10)는 5년 이상 연속해 체류한 외국인에겐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학 입학 문턱을 넘더라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A씨처럼 학비와 생활비를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데, 시간제 취업(아르바이트) 허용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다. 이진혜 변호사는 “학자금 대출이나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고, 휴학할 수도 없다”며 “휴학하면 비자 연장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등록 아동, 유학생 아냐…사회적 논의 절실”
전문가들은 법무부 조치가 연장은 물론 상시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후 관리, 아동 정책 영향 평가 등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진혜 변호사는 “가족 결합권을 고려해 요건을 완화하고, 아동이 체류 자격을 받고 나서 어떻게 지내는지, 생활에 어려움이 뭔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조사해 필요한 지원도 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한국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체류할 수 있게 해 줄지는 논의해 봐야 한다”면서도 “한국이 포용적인 이민 정책을 추구한다면 사회 통합적 측면에서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 아동들의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고 했다.

장주영 정책연구실장은 “단순히 교육 또는 체류 기간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아동이 제대로 발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에 공백이 있는지 없는지, ‘아동 최상의 이익’을 기준으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 조치에 대해서도 아동 정책 영향 평가를 했으면 좋겠고, 이는 상시화 검토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복지법상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 관련 정책이 아동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평가해 그 결과를 정책 수립·시행에 반영해야 한다.
나아가 장주영 정책연구실장은 “부모들에게도 자녀가 한국에 어떤 방식으로 남을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유학생이 아니다”며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한국에 정착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의 한 외국인 지원 센터 관계자는 “유학이란 건 자발적 선택인데 이 아이들은 (한국에 오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게)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며 “외국 국적이지만 언어나 문화가 사실상 한국인인 아이들이 한국에서 꿈을 갖고 인재로 성장해 기여도 할 수 있게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사강 연구위원도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해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을 유학생이나 이주 노동자들과 똑같이 대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생산연령인구가 부족하다’, ‘인구가 감소한다’, ‘지역이 소멸된다’며 유학생을 유치해야 한다고 하는데, 멀쩡한 아이들에게 정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소한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얘들에겐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비자를 줘야 한다”면서 “고졸이란 조건을 따진다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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