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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호국 성지 가는 美 참전용사의 그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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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2 12:56:47 수정 : 2025-02-22 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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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스트링햄(Roger Stringham)은 192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캘리포니아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스트링햄의 대학 생활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징병 제도가 있었고 스트링햄은 학업을 중단한 채 육군 병사로 입대했다. 군사훈련을 마친 그는 1951년 미 육군 제21보병사단 일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1952년 21사단이 한국을 떠나 일본 센다이(仙台)에 재배치될 때까지 1년가량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미국의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화가인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에서 목격한 전투를 그린 그림 ‘백병전’. 연합뉴스

장차 예술가를 꿈꾸던 미대생의 눈에 전쟁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일단 전장을 벗어나면 낯선 나라 한국의 자연은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스트링햄은 쉬는 시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병사 신분에 제대로 된 미술 도구를 휴대할 순 없었다. 연필 그리고 각종 보급품 상자 바닥에서 뜯어낸 종이가 전부였다. 훗날 인터뷰에서 스트링햄은 “긴박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은 것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나는 괜찮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려 집에 보낸 그림은 60장에 달했다.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병사들의 얼굴부터 한국 시골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까지 다양했다. 스트링햄의 부모는 이를 모아 1952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전후 스프링햄은 대학으로 돌아갔다. 다만 전공을 미술에서 핵물리학으로 바꿨다. 핵융합 분야 전문가이자 저명한 학자로 성장한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완전히 부서진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너무 놀랐다”는 소감을 밝혔다. 자신이 6·25 전쟁 참전 기간에 그린 그림들의 보관 장소를 찾던 스트링햄은 2022년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작품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유업재단은 이를 다시 전쟁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이후 2023년 8∼10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낯선 친구, 한국’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통해 스트링햄의 그림들이 처음 한국인과 만났다. 전시회는 높은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끝났다.

 

경북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열릴 ‘전쟁을 그린 화가’ 전시회(2월25일∼7월27일)의 포스터. 왼쪽 아래 작은 사진은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화가인 로저 스트링햄.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6·25 전쟁 당시 한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스트링햄의 작품들이 이번에는 경북 칠곡을 찾는다. 전쟁기념사업회는 25일부터 7월27일까지 5개월 동안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전쟁을 그린 화가’라는 제목 아래 전시회가 열린다고 밝혔다. 이는 소규모 박물관, 기념관을 대상으로 전쟁기념사업회가 진행 중인 ‘전쟁·군사박물관 협력망’ 사업의 일환이다. 칠곡은 6·25 기간 가장 치열했던 싸움으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백선엽 장군이 이끈 다부동 전투 승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국을 구한 위업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칠곡이 ‘호국 성지’로 불리는 이유다.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전시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6·25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느덧 90대 중반을 넘긴 노(老)작가 스트링햄에게 새삼 감사의 뜻을 전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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