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인 1824년 美 대선부터 예측 실패
트럼프 출마 때마다 조사기관들 틀려
韓선 노태우 당선 맞춘 13대 대선 시작
19대·20대 총선 득표차 예상과 판이
尹 땐 ‘6%P차 승리’ 점쳤지만 ‘0.73%P’
정쟁에 밀려 제도 개선은 ‘뒷전’
尹 지지율 40%·탄핵 찬성 60% ‘제각각’
표본 조작·편향 의혹… 여론형성에 악용
‘명태균 게이트’ 민의 왜곡 경각심 커져
선관위, 사전신고 확대 등 개선안 내놔
여야 “방지법 제정”… 관련법은 계류 중
‘탄핵 반대’ 구심점으로 떠오른 한국사 스타 강사인 전한길씨가 연일 탄핵 반대 집회에서 외치는 말이다. 전씨 주장의 근거는 여론조사다. 하지만 10%까지 떨어졌던 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닌 ‘직무수행 평가’다.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해지자 일부 기관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한 것이다. 국정운영 긍정 평가를 ‘지지율’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탄핵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를 동일선에 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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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과잉의 시대다. 서로 다른 기관의 의뢰로, 수십 개의 기관에서 여론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여론조사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정당 지지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각종 현안. 비슷한 시기 같은 문항에 대해서도 결과는 들쭉날쭉하다. 올해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시점에도 탄핵 찬성 응답은 60%를 넘었다. 그 안에서 진짜 ‘민심’을 읽기는 쉽지 않다.
여론을 보여줄 도구여야 할 여론조사가 여론 형성에 이용되기도 한다. 실제 전씨와 마찬가지로 보수 진영은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내세워 ‘세 결집’에 힘썼다. 탄핵 국면 이전에는 ‘명태균 게이트’가 정국을 흔들었다. 정치 브로커 명씨는 지난 대선 국민의힘 후보 경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기 위해 표본을 조작한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왜곡된 결과가 민의로 둔갑하면 실제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야말로 ‘왜그 더 도그’(Wag the Dog: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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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론조사, 1824년 美 대선
그렇다면 이런 여론조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최초의 여론조사는 18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로 알려져 있다. 해리스버그 펜실베이니언이라는 신문은 퀸시 애덤스와 앤드루 잭슨 등 4명의 대선 후보를 두고 여론을 들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선 잭슨이 앞섰지만, 실제로는 애덤스가 당선됐다. 200년 전 여론조사 역시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했던 셈이다.
현대적 의미의 여론조사는 193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36년 미 대선은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당시 가장 큰 여론조사 회사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1000만장의 여론조사 용지를 돌린 후 230만장의 응답을 받아 앨프 랜던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응답자가 5만명에 불과했던 갤럽 여론조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예측했다.
결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승리. 리터러리 다이제스트가 유선전화 가입자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한 것이 패착으로 꼽혔다. 고소득자인 공화당 지지자들의 응답이 높아져 표본의 편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 갤럽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보다 표본이 훨씬 적었지만, 다양성을 확보한 덕에 결과를 맞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갤럽은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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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은 1987년부터… 왕왕 빗나가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는 1987년 13대 대선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한국갤럽은 투표 마감 직후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약 34.4%의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실제 노 후보는 36.6%로 당선됐다. 이후 지방자치제 도입, 선거법 개정 등으로 여론조사가 활성화되면서 여론조사기관도 크게 늘었다.
다만 여론조사가 항상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박빙 승부를 예측한 2012년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됐던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23석으로 122석의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됐다. 20대 대선에서도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최소 6%포인트 이상 앞설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졌지만, 실제로는 0.73%포인트 차 승리에 그쳤다.
선진국에서도 여론조사가 현실을 담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당선을 정확히 맞췄던 갤럽 역시 마찬가지다. 루스벨트 사망으로 치러진 1948년 대선에서 갤럽은 공화당 토머스 듀이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결과를 내놨다. 실제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듀이를 앞서지 못한 민주당 해리 트루먼 후보가 당선됐다. 미 여론조사 기관들은 2016년, 2020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출마한 대선마다 곤욕을 치렀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은 물론 2020년 트럼프와 바이든의 접전, 지난해 트럼프의 압승까지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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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 정치권, 제도개선은 뒷전
여론조사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정치권은 우후죽순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기구를 만들며 대응에 나선다. 명태균 게이트 당시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 여론조사를 뿌리 뽑겠다며 ‘명태균 방지법’을 내놨고, 국민의힘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뤄지는 여론조사 관련 제도개선을 하겠다며 ‘여론조사 경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역전하는 여론조사들이 속출하자 민주당은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여야 모두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여론조사 결과에는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정쟁에 밀려 제도개선은 요원하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여론조사 제도개선과 관련해 국민의힘 박정훈·조경태, 민주당 윤준병·이해식·한민수,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전부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여심위, 선거여론조사 개선안 마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역시 여론조사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다. 여심위는 지난해 10월 선거여론조사 신고면제 대상을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선거여론조사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에는 인터넷 언론사의 경우 일일 평균 이용자 수와 관계없이 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신문사도 ‘일반일간신문사업자’(일간지)로 면제 대상을 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라 선거여론조사를 하려면 조사 이틀 전 여심위에 목적·지역·방법·설문내용 등을 신고해야 하지만, 정당·방송사·신문사·뉴스통신사 및 일일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인 인터넷 언론사는 예외적으로 신고 의무가 없다. 실제 22대 총선 때 등록된 선거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신고면제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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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외 적용이 잦다 보니 조사가 특정 후보자의 선거운동 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사전 차단이 어렵고, 사후 조치만으로는 불공정 여론조사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명씨의 경우에도 자신이 대표 겸 편집국장이자 사전신고 대상이 아닌 지역 인터넷 언론사 등의 의뢰를 받는 수법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표용 선거여론조사 인센티브 제공 의무화 △휴대전화 가상번호 문자기능을 통한 웹 조사 도입 △선거여론조사 일정 사전 공개 금지 △선거 여론조사기관 등록 요건 강화 △선거여론조사 품질평가 제도 도입 등도 개선안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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