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밑그림 그리는 역할 맡아
설치 필요성엔 의·정 모두 공감대
복지위, 추계위 설치 개정안 심사
정부는 의대 ‘모집인원’ 변경 허용
정부 “보정심 산하 기구로 둬야”
의료계 “독립성 고려 민간기구로”
운영 방식·구성원 비율엔 이견
의사들도 “이젠 대화할 때” 목소리
정부의 의대 증원에 따른 전공의·의대생의 집단 사직·휴학 등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의료대란 해결의 실마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추계위는 의·정 갈등의 ‘핵’인 의대 정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한다. 그간 정부와의 공개 소통에 선을 그어왔던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국회의 추계위 설치 공청회에 참여하면서 타협의 여지가 확인됐다. 정부도 추계위 회의록 공개 등 의료계 주장 일부를 반영한 법안 수정안을 제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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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위 위상·구성 등 곳곳 ‘지뢰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4일 공청회에 이어 19일 법안소위를 열고 추계위 설치를 골자로 한 보건의료기본법·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보건복지부는 복지위 법안소위에 추계위 설치 법안과 관련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 절차 외 ‘모집인원’을 조정할 수 있는 특례 도입 의견을 냈다. 추계위에서 시간상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결론을 내기 어려운 경우 대학이 교육부와 사전 협의해 모집인원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교육부와 각 대학총장들에게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동결하자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일단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원칙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 추계위에서 결정할 계획”이란 입장이다. 정부가 추계위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논의할 수 있단 건 분명히 한 건데, 당장은 추계위 구성까지 곳곳이 ‘지뢰밭’이다.
추계위 위상부터 의견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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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 기구로 추계위를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사단체는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들어 복지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민간 기구로서의 추계위를 주장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추계위 결론이 그대로 의대 정원에 반영된다면 모르겠지만 정부 기구를 그 위에 두는 건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실제 추계 결과 활용에서 정부는 보정심이 추계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관련 법에 넣자는 입장이지만, 의사단체는 ‘직접 반영’이란 표현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간극이 가장 큰 건 위원회 구성 문제다.
정부는 복지위 법안소위에 이 문제와 관련해 ‘공급자단체 추천 전문가 과반수 구성’을 제안했다. 이는 그간 의사단체가 주장해 온 병원 경영자 단체의 과반수 제외와 차이가 크다. 대전협은 법정 의료기관 단체인 대한병원협회를 거론하며 “의사보다는 경영인 혹은 사용자로 보는 게 합당하며 과반에서 제외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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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건 ‘대화’와 ‘결단’”
여러 쟁점 사안이 해소되지 않은 채 관련 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 추계위가 출범하면 의료계가 ‘보이콧’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그나마 추계위 논의로 국면 전환의 기미가 보이는 의·정 갈등이 다시금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에서 법안 논의가 오가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며 언급을 삼갔다. 의협·대전협은 추계위 논의와 별도로 정부 측과도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등에 대한 물밑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현장에서도 추계위를 계기로 한 의·정 갈등의 ‘출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채희복 충북대병원 교수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의·정) 서로 간에 대화가 분명히 필요하다”며 “추계위를 통해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보텀업(상향식)으로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탄핵 국면인 상황에서 소관 부처의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이란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대통령 탄핵 국면이지만) 책임이 있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타협을 하면 된다. 그만큼 용기가 있느냐의 문제”라며 “늦더라도 4월 전에 담판을 짓지 못하면 또다시 1년을 허비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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