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 간 소통이 쉽고 의사결정이 빠른 것은 작은 조직의 장점이다. 반대로 조직이 커져 수장의 일거수일투족이 관리 대상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조직원과 수장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막이 가로놓이기 마련이다. 이 순간부터 수장의 비서들에게 힘이 실린다. 흔히 말하는 ‘문고리 권력’이다. 문고리 권력이 활개 칠수록 조직은 경직되고 추락할 여지가 커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김기춘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마지막 공직생활은 역대 최고령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하에 기춘대원군, 왕실장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폐쇄적 리더십은 문고리 3인방의 전횡을 키웠고, 결국 국정농단으로 비화했다. 대통령의 총애와 의존도가 얼마나 높았던지 상관이었던 김 비서실장도 이들을 함부로 나무라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재선된 도널드 트럼프 2기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수지 와일스(67)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명됐다. 백악관 운영을 총괄하는 비서실장에 여성이 지명된 건 미 역사상 처음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얼음 아가씨’(ice maiden)로 부를 정도로 냉철한 조언을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충성파로 분류된다. CNN은 7일 “와일스 위원장이 비서실장직 수락 조건으로 누가 집무실에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지 통제할 권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문고리’ 권력을 자처한 셈이다.
또 다른 막후 실세인 장남 트럼프 주니어도 같은 날 폭스방송 인터뷰에서 “정권 인수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며 “나는 누가 진짜 선수인지, 누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실제로 실현할 것인지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충성도 감별사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향후 대통령 접근권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 1기 백악관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트럼프의 돌출 행동 탓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던 존 켈리조차 이번 대선 직전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비판했겠나 싶다. 집권 2기가 막을 내린 뒤 와일스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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