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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참 서툰 사람, 그 이름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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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21 23:43:05 수정 : 2024-05-21 23: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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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늘 그렇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다 문득, 계절에 맞는 옷가지나 먹거리를 사들고 찾아갔을 때 우리를 배웅하면서 문득 말하곤 한다. “미안하고 참 고맙다” 우리, 그러니까 언니들과 나는 대체로 웃어넘긴다. 뭐가 그렇게 미안해, 뭐가 또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딸 셋이 와르르 웃는 모습을 아빠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는 또 한 번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다 미안하고 참 고오맙다.

건강검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은 아빠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다녀올 때도 그랬다. 검사실로 들어간 아빠를 기다리며 괜히 복도를 서성였다. 병원 분위기가 유난히 어수선해 불안한 마음이 배가된 참이었다. 노인이 된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자연스러운 노화라지만 내겐 다만 급작스러운 통보처럼 느껴지는 병증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빠, 배고프지?”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빠에게 언니가 물었다. “종일 금식했으니 얼마나 배고플 거야.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우리는 병원을 나와 뚝배기에 담긴 뜨거운 순댓국을 훌훌 들이마셨다. 뱃속이 묵직하고 따뜻해지자 마음이 덩달아 평온해졌다. 예측하기 어려운 내일을 마냥 두려워하는 것보다 오늘의 다정함과 따뜻함을 지켜내는 것이 조금 더 현실적인 일 같았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오는데 아빠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듣지 않아도 알겠는 그 말을.

돌이켜보면 아빠는 참 바쁘고 외롭게 살았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꼭 한 달 전에 태어났으니 시작부터 쉽지 않았던 셈이다. 직업군인과 베트남전 참전용사를 거쳐 해외 건설노동자가 되었다가 자영업을 시작한 이래 IMF로 쫄딱 망한 뒤 택시운전사가 되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기엔 참 많은 일들을 거치고 많은 곳을 누볐다. 아빠는 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들에 대해 여전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어린 딸들을 홀로 키우다시피 했던 엄마의 젊은 날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니 버릇처럼 말하고 마는 것이다.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을, 그래도 여전히 함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알고 있을까. 나는 아빠가 해외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꼭꼭 사오던 초콜릿상자를 기억한다. 조개와 고둥, 소라 모양이었던 그 초콜릿들이 예쁘고 좋아서 손에 한참을 쥐고 있다 흐물흐물 녹아버린 다음에야 입안에 넣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놓인 초콜릿상자를 발견하면 아빠가 왔구나, 생각했고 다디단 초콜릿을 입에 잔뜩 넣고 거실로 나가면 그곳에 틀림없이 아빠가 있었다. 이후에도 아빠는 소소한 것들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된 일과가 끝난 뒤 말랑말랑한 복숭아나 바나나 같은 것을, 찹쌀도너츠나 땅콩과자 같은 것을 사들고 돌아와 우리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우리는 자랐다. 그러니 그만 미안해하면 좋을 텐데. 아빠는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한시도 쉴 틈 없이 고군분투해 왔으면서 가족 앞에서는 참으로 서툰 사람. 집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우리는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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