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박수받는 ‘합의’ 입법

관련이슈 김정기의 호모 커뮤니쿠스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4-05-06 00:14:03 수정 : 2024-05-06 00:14:0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난 목요일(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이 법의 여정은 험난했다. 국정조사, 야당의 단독 입법과 통과, 여당의 격렬한 반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이력은 파란만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가족의 눈물, 폭우 속의 삼보일배, 눈 덮인 길에서 오체투지가 있었다. 참사의 원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정쟁에 허비한 여당과 야당 모두에 대한 원성도 있었다.

이 특별법 통과에 특별한 관심이 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여당과 야당이 쟁점 법안에 대해 ‘합의 처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왜소한 국민의힘의 반대로 인한 평행선 대치가 일상화된 21대 국회에 대한 환멸을 잠시라도 씻어주는 낭보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얻은 성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도출한 결과인 것은 틀림없다. 여야가 ‘상호 설득’을 통해 민주당이 주장해온 특별조사위원회의 직권조사권과 영장청구권을 없애고, 위원장을 포함하여 조사위원회(9명)의 다수(5명)를 야당이 차지하는 것에 국민의힘의 동의가 합의통과를 이뤄낸 것이다. 고질적인 대치와 책임을 전가하는 ‘네 탓 공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양보의 설득’임을 알려준 것이다.

상대와 설득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다. 완력이나 무기 대신 말이나 글을 통해 상대를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게 하거나, 의견의 차이를 좁혀서 합의하게 하는 설득은 독특한 자산이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번성할 수 있게 한 놀라운 축복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 설득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수사학이라는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치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주목받았으며, 현대에서도 설득은 커뮤니케이션학의 주요 분야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목표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성공적인 설득은 개인과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당파적 아집으로 인한 국회 파행 속에서 합의의 협치를 보여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다수결에 의한 일방독주의 입법 속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설득의 지혜를 재발견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보다 당을 위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에게 설득당하면서 합의의 입법을 할 때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