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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땅속, 막다른 장에서 캐던 검은 희망…이제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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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9 16:25:54 수정 : 2024-03-29 16: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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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탄광' 태백 장성광업소…마지막 채탄 작업한 광부 100여명
오는 6월로 폐광 수순…"우리에겐 삶의 터전, 막장이라 쉽게 말 않았으면"

석탄 산업의 수도 태백, 그곳에 자리한 국내 최대 탄광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폐광을 3개월여 앞두고 마지막 원탄(막장에서 갓 캐낸 탄)을 뱉어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장성광업소는 그 온몸에 국내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를 오롯이 새겼다.

광부들은 최후의 채탄 작업을 위해 다시 1천75m 아래로 내려갔다.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자 카메라를 들고 이들을 쫓았다.

 

29일 강원 태백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직원들이 마지막 채탄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남들은 막장이래도 우리에겐 고마운 곳…잠이 오지 않아요"

29일 이른 오전, 작업복에 안전모와 전등, 장화, 방진 마스크까지 갖춰 입은 채광 주임 강기석(59)씨는 갱도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오늘이 장성광업소에서 탄을 캐는 작업을 마지막으로 하는 날인 까닭이다.

1985년 1월 15일 석탄공사에 들어와 40년 가까이 장성에서 일한 그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1천여m 땅속 막장에서 허리도 못 펴고 탄을 캐던 청년은 어느덧 어엿한 현장 책임자가 됐다.

그동안 가정을 일궜고 쌍둥이 딸을 잘 키워 서울로 보내기까지 했다.

강씨는 갱으로 들어가기 전 동료들과 두유 하나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광부들은 모두 마지막 채탄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광부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다른 광부는 "다들 지금은 싱글벙글 웃지만, 저녁에 소주 한 잔 마시면 줄줄이 눈물 흘릴 것"이라고 농담했다.

갱도 입구에서 10분가량 걸으면 지하로 300여m 아래로 내려가는 케이지가 나왔다. 이를 타고 수직으로 내려가 인차라고 불리는 열차로 갈아타고 400m가량을 더 내려가야 채탄 작업 최전선인 막장이 나온다.

갱도 곳곳에는 광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여기서 다들 손에 든 도시락을 꺼내 작업 전 끼니를 때웠다.

서로 챙겨온 음식을 나누며 이들은 마지막 날까지 안전하기를 서로 바랐다.

인차에서 내려 막장으로 향하는 길은 곳곳이 험했다.

습하고 미끄럽고 낮아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걸어야 했다. 툭 튀어나온 모서리에 안전모가 종종 부딪혔다.

이날은 발파나 착굴 작업은 없었다. 대신 그동안 파놓은 원탄을 빈 차에 가득 싣고 올리는 송탄 작업이 주로 이어졌다.

새카만 돌덩이처럼 보이는 원탄은 반짝이는 윤기가 흘렀다.

작업하던 광부는 "이게 대장간에서 쓰는 최고급 탄"이라며 "국내 석탄 생산이 멈추면 수입 탄 가격이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사람들은 쉽게 막장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곳은 광부들이 가족을 꾸릴 수 있게끔 한 삶의 터전"이라며 "막장이란 말을 쉽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9일 강원 태백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직원들이 마지막 채탄 작업을 위해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내 석탄 산업 역사 온몸에 간직한 장성광업소…이제 쇠락의 길로

장성광업소는 태백 최초 석탄 발견지인 장성동 거무내미 인근에 자리 잡았다.

혹자는 1931년 일본인 지질기사가 처음 조사해 1936년 삼척탄광으로 개광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조선광구일람(朝鮮鑛區一覽)의 기록에 따라 1921년 1월을 개광일로 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폐광지역활성화센터는 '일본제국주의(일제)가 삼척탄광을 발견·개발했다'는 논조는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한다.

1905년 1월 23일 자 황성신문 기사에 삼척·정선을 포함해 전국의 탄전지대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고, 한국인 3명이 일제 또는 일본인보다 먼저 삼척군 석탄광 광업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이 일제가 삼척탄광을 조사·개발했다는 그동안의 논조를 뒤집는 근거라고 강조한다.

장성광업소는 개광 당시 삼척 도계광업소 산하 장성갱이었지만, 점차 몸집을 키우면서 장성광업소로 독립해 국내 최대 규모의 광업소로 우뚝 섰다.

1950년 대한석탄공사가 창립되면서 장성광업소는 석탄공사 산하가 됐다.

석탄 생산량은 1951년 2천652t에서 1955년 40만여t으로 4년 새 가파르게 상승했다. 1959년에 최초로 100만t을, 1966년에는 200만t을 뛰어넘었다.

1979년에는 228만t으로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석탄 산업은 정부 정책과 함께 급격히 쇠퇴했다.

탄광 구조조정인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 첫해인 1989년부터 탄광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활황기 6천여명에 달했던 장성광업소 종사자 수는 현재 400명대로 줄었다.

이제 3개월 뒤면 장성광업소는 채탄 중단을 넘어서 폐광의 길을 걷게 된다.

지역 소멸 가속화는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태백시의 '탄광지역 폐광 대응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장성광업소는 지역 총생산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 실업자는 900명 가까이 발생하며 상가 폐업 등 지역경제에 끼치는 피해는 연간 552억여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태백시는 도와 함께 정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할 방침이다.

고용위기지역은 고용 사정의 급격한 악화로 지원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 일정 기간 지정한다.

지정기간은 최초 최대 2년이며 1년의 범위에서 3회까지 연장할 수 있다.

고용위기지역에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고용유지 조치에 대한 지원 수준 확대,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 사회적 일자리 및 고용안정·직업 능력개발 등 일자리 관련 사업비를 다른 지역에 우선해 지원한다.

도 역시 폐광지역 종합 발전 전략과 대체 산업 육성을 집중하여 추진하고자 오는 7월까지 폐광지역 전담 조직을 1개 과에서 2개 과로 늘릴 계획이다.

김진태 지사는 전날 장성광업소를 찾아 "폐광지역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며 "폐기물로 취급되는 경석을 산업자재로 쓸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을 강원특별법 3차 개정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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