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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할 때도 부르지 마세요”…‘말’ 안 되는 요즘 술집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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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4 01:20:00 수정 : 2024-03-25 1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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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금지·DM 주문 등 ‘침묵’ 매장 인기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술집에서 손님들이 대화없이 앞 화면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주인장 부르기 없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적막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은 후 직원이 쓰윽 내민 메뉴판을 받자 맨 앞장에는 이곳에서 지켜야 하는 안내사항이 적혀있었다. ‘메뉴 주문과 신청곡은 꼭 카카오톡 메시지나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보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일행 간 대화가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함께 온 한 연인들도 앞만 바라보며 음악을 즐길 뿐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시끄러운 대화 등이 금지된 무음(無音) 매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문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나 메모로 해야 하는 등 ‘말’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대화는 물론 귓속말도 금지된다. 휴대전화도 무음 모드로 변경하거나 반납해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규칙을 어기고 시끄러운 소음을 낼 경우 퇴장을 요구하는 매장도 있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이색 ‘힐링’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일부 매장은 예약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해 대기를 해야 할 정도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술집에서 안내 중인 ‘대화 금지’ 규칙.

 

이곳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 속 사람에게 치이지 않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침묵’ 카페를 운영 중인 정윤영(53)씨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데 옆 사람에 따라 ‘복불복’이 되는 날들이 있지 않느냐. 혼자 온 손님들이 눈치 보지 않고 즐길 곳이 필요했다”며 “저같이 내향형인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씨 말처럼 카페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혼자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밤에는 위스키바도 함께 운영하는데 규칙을 어기거나 불편해하는 손님은 아직 없었다”며 “젊은 세대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찾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침묵’ 카페. 업주가 소음이 적은 수동 그라인더를 사용하고 있다.

 

방문객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무음 술집을 방문한다는 직장인 김수진(34)씨는 “보통 술집에 혼자 가면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불필요한 대화를 걸어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며 “이런 곳에서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사색이 필요할 때 일기장을 들고 자주 온다”고 말했다. 매장 방명록에도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 곳이 꼭 필요했다’ ‘저처럼 힘든 분들 위로받고 가시길 바란다’ 등의 긍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다만 이런 콘셉트에 익숙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서비스가 부족한 것 아니냐’ ‘인스타그램 등을 하지 않거나 어려운 세대는 어떡하냐’ 등의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공간으로 향하는 역설적인 심리가 반영됐다”며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해서는 잘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욕구가 있어서 완전히 고립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지만, 요즘 SNS가 발달해 ‘과잉 관계’ 시대가 되며 이것에 대한 피로감도 함께 느끼게 된 것”이라며 “업주들 입장에서는 인건비도 줄이고 소위 ‘진상’ 손님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돈을 지불한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가 불친절하거나 비인간적이라 느낄 수 있으니 사전 안내가 전제돼야 한다”며 “불편을 느끼는 어르신 세대나 외국인 등을 고려한 타깃층 설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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