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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공원인데, 공놀이 자제하라니…”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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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3 16:00:00 수정 : 2024-03-24 19: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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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되지 않은 공 튀길 자유

양천구, 주민들 소음 민원에 현수막 설치
SNS에 사진 퍼지며 곳곳서 비판 쏟아져
누리꾼들 “어린이공원 이름부터 바꿔라”
“어른 목소리가 저출산 해결 역행” 지적도
구청측 예상 못한 논란에 열흘 만에 철거

“아이 웃음 놀이터 가득 차면 건강히 성장”
이웃 동네의 어린이공원 표어 새삼 눈길

“아이들만 노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옆에서 살펴보던데….”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A어린이공원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아이들의 노는 소리에 민원이 있었다던데,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수막까지 걸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았다”며 이같이 답했다. 빌라 밀집 지역 내 공원이어서 소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공놀이 자제’ 현수막이 붙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서울 양천구 A어린이공원에 설치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었던 ‘공놀이 자제’ 현수막(사진 왼쪽)이 지난 19일 기준으로 철거돼 보이지 않는다. 김동환 기자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던 주민 B씨는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면서도 “밤에는 소리가 크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A어린이공원 현수막 논란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 최근까지 ‘어린이공원 내 축구·야구 등 공놀이 자제해 주세요. 이웃 주민들이 공 튀는 소음에 힘들어해요’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민원 제기에 구청이 설치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현수막 사진이 퍼지면서 어린이공원 조성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누리꾼들 비판이 터져 나왔다.

◆허락되지 않은 공 튀길 자유

논란의 현수막은 SNS에서 엇갈린 반응이 쏟아진 지 열흘 가까이 흐른 뒤인 지난 15일 철거됐다. 구 관계자는 통화에서 ‘문구 순화’를 위해 현수막을 내렸다며 재설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이들이 노는 행위의 강력한 제지로 해석된 문구를 ‘이웃 배려’ 방향으로 고쳐 다시 설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는 민원 발생 시 우선 현장 계도 후,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음 자제’ 등 현수막을 설치해 왔다고 한다. 민원을 받아들이자니 아이를 막는 셈이 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 소극 행정 비판 가능성이 있어 ‘공놀이 자제’ 현수막을 설치했는데, 생각지 못한 논란에 구청도 적잖이 난감한 듯했다. 구 관계자는 최선의 절충안 마련에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아이의 공 튀길 자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어른의 목소리가 저출산 해결책을 찾는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아이들의 어린이공원 이용 금지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다.

현수막 사진을 공유한 누리꾼들은 ‘좁은 공간이 아닌 공 튀는 소음이 이유라니 황당하다’, ‘저출산 해결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곳이 없다’, ‘현수막 설치 전에 어린이공원 이름부터 바꾸는 게 어떨까’ 등 댓글을 달았다.

반면에 ‘축구공으로 주택가 유리창이 깨질 수도 있다’, ‘공놀이하면 더 어린 아이들이 놀기 어렵다’, ‘공놀이는 다른 곳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등 민원에 공감하는 반응도 있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어린이공원 입구 바닥에 매설된 표어. ‘어린이의 노는 소리와 웃음으로 놀이터가 가득 차면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란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아이 웃음이 놀이터 가득 채워야

세계일보가 같은 날 살펴본 양천구 신월·신정동 주택가 어린이공원 총 20곳 중 A어린이공원을 포함한 5곳에서 ‘야간 소음 발생 주의’나 ‘이웃을 위해 소음 발생에 주의하자’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C어린이공원의 ‘양천구 어린이의 착한 배려’ 제목 현수막에는 △앗∼위험해!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기 △내 것처럼 소중히, 공공시설은 조심히 다루기 △공원은 깨끗이,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기와 함께 ‘쉿∼조용히∼, 큰 목소리 자제’ 문구가 적혀 있었다. D어린이공원의 ‘어린이공원 이용 수칙’ 현수막은 ‘늦은 밤 소음으로 이웃들이 고통받는다’며 놀이터의 야간 이용 자제를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큰 목소리 내기 자제 요청 현수막을 연달아 본 뒤 들른 E어린이공원 입구에서는 앞선 공원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표어가 눈에 띄었다.

오가는 주민이 쉽게 볼 수 있게 입구에 설치된 표어는 ‘놀이터에서 어린이는 몸으로 시를 쓰고 몸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껏 논다’고 강조했다. 특히 ‘어린이의 노는 소리와 웃음으로 놀이터가 가득 차면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란다’고 내세웠다. 이곳에서 노는 아이들이 ‘축구와 야구를 자제해 달라’는 이웃 동네의 현수막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없다”며 민원 제기가 못내 아쉽다던 A어린이공원 인근 주민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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