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대학 대자보 없어
교육자로서 문제 의식 느껴
언론들 국제뉴스 비중 낮아
협소한 세계관 확장 나서야
“지금 한국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입니다.”
이스라엘과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장기화하는 전쟁의 상흔을 보며 1인 시위에 나선 교수가 있다. 이성재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만났다. 시위 중이던 그는 한 손에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학살을 중단하라’고 쓰인 피켓, 다른 한 손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와 영정 액자 사진을 붙인 관을 들고 있었다.
이 교수는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부모를 여읜 아이가 이후 또 폭격을 당해 두 다리마저 잃었다는 기사를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하고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1인 시위는 그가 생각한 ‘뭐라도’ 가운데 하나였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에서 지난 5일 발표한 ‘이스라엘-하마스 즉시 정전을 촉구하는 한·미·일 교수·연구자 성명’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한 뒤 캠퍼스에 대자보 하나 붙지 않는 것에 교육자로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편을 떠나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도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아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입장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선 대화하기보단 함구하는 오늘날 대학 사회의 단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이면에 협소한 세계관이 있다고 짚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20년 전 유학 시절 목격한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길 위로 나서게 했는지 봤더니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이 교수는 “파리의 평범한 시민들이 낯선 나라의 문제로 데모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 언론에서 국제 뉴스 비중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나마 늦게라도 보도되는 뉴스도 해외 통신 기사를 설명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Le Monde)’는 이름부터가 세계라는 뜻”이라며 “한국 언론사 웹페이지를 살펴보면 국제 기사 탭은 맨 마지막 순서”라고 꼬집었다.
세계관을 넓히는 것은 사회적 대화를 복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문제는 국제적이며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교수는 한 계간지에 ‘동상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홍범도 장군상 철거 논란을 논하기 위해 해외에서 발생한 동상 철거 논란을 정리해 소개했다. 그는 “문제의 역사적 맥락을 봐야 싸움이 아닌 대화와 논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인 시위 내내 거리는 썰렁했고 이스라엘 대사관은 조용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추운 날씨에 옷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관 한 명이 다가와 호기심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이 교수는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인물 ‘안옥윤’의 대사를 읊었다.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해요.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모른 체하는 당신처럼 살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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