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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쇠 달구고 망치질 반복… 웅장한 소리 ‘징’ 매력 흠뻑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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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17 15:00:00 수정 : 2023-09-17 16: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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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명맥 이어가는 전희수 방짜유기장

기록적 폭염과 요란한 태풍을 이겨낸 벼가 뜨거운 가을 햇살에 누렇게 익어 가는 너른 들판을 지나니 ‘아산방짜유기’라는 페인트칠 벗겨진 낡은 간판 아래에서 땅땅 쇠 두드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쇠를 녹이는 고온의 가마가 뿜어낸 열기로 후끈 가열된 공기가 찜통 안에 있는 듯하다.

전희수 방짜유기장이 완성된 징을 치며 소리가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고 있다.

방짜유기는 주석과 구리를 합금한 질 좋은 놋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려 만든 그릇, 제기, 사물놀이 악기 등을 말한다. 장인(人)과 쇠(鐵), 불(火)의 조화로 탄생하는 것이 방짜유기다.

 

“온도가 1300도 이상 올라가야 쇳물이 녹아요. 온도를 재는 게 아니라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온 방식대로 눈으로 녹는 정도를 확인하면 알 수 있어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전희수(70) 방짜유기장이 첫째 아들 진호(46)씨와 함께 쇳물을 녹이는 작업을 하면서 말한다.

구리·주석 녹이기 1300도 이상의 가마에 구리와 주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1300도 이상의 가마에 구리와 주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바둑’ 만들기 구리 78%와 주석 22%의 비율로 녹여 합쳐진 쇳물로 바둑알 모양의 ‘바둑’을 만들고 있다.

구리 78%와 주석 22%의 비율로 용해로에 넣어 녹여 하나가 된 방짜쇠(합금) 쇳물을 23㎝ 크기의 원형 쇠틀에 붓자 순식간에 메케한 연기가 사방을 뒤덮는다. 이렇게 나온 동그란 모양의 방짜쇠는 바둑알을 닮았다고 ‘바둑’이라고 부른다. 완성된 바둑은 불로 달군 뒤 망치로 두드리고, 식으면 다시 달궈 망치질을 거듭해 원래 크기보다 몇 배는 크고 얇게 편다. 이 과정을 통해 방짜쇠는 더욱 강하고 견고해진다.

 

얇아진 판들은 서너 장씩 덧대 오목하게 가공한 뒤 그릇이나 악기 등 원하는 모양의 깊이대로 잘라내고 형태를 만들어 수천번 망치질을 다시 반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릇이나 징, 꽹과리는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다. 기계화가 도입된 다른 작업장과는 달리 이곳은 거의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져 손이 많이 간다.

모양 잡기 바둑알 모양의 방짜를 다시 가열해 넓게 펴고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만들고 있다.
방짜를 강하게 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 넣어 식히고 있다. 식힌 방짜는 다시 가열해 두드리기를 반복한다.
다시 가열 망치질을 하던 방짜가 식으면 고온의 가마에 다시 넣어 가열한다.

겹겹이 낀 장갑을 벗으며 선풍기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전희수 방짜유기장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그을음에 거멓게 된 수건으로 닦는다. “고열에 쇳물을 녹여 하는 작업은 화상의 위험이 있어요. 방짜 일을 52년을 했어도 늘 조심하며 작업해야 해요.”

모양이 나온 방짜에 전희수 방짜유기장과 큰아들 전진호 씨가 망치질을 반복하고 있다.
가공 얇아진 판들을 서너 장씩 덧대 오목하게 가공해 쓰임에 맞는 형태로 만들고 있다.
반복된 망치질로 완성된 방짜유기를 세밀한 기계로 깎는 성형을 하고 있다.

방짜 식기는 주기적으로 닦아 황금빛을 내야 해 관리하기 아주 힘들다. 예전엔 집집마다 있던 것이 거의 사라진 이유다. 방짜가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사물놀이에 쓰이는 징과 꽹과리 덕분이다. 징과 꽹과리는 방짜로 만들어야 두 음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진폭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사물놀이 특유의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 주물로 찍어내면 음의 파장이 직선으로만 뻗어 나아간다.

소리 점검 전희수 방짜유기장이 완성된 징을 망치로 두드려 소리를 세밀하게 점검하고 있다.
전희수 방짜유기장이 완성된 징을 망치로 두드리며 소리를 점검하고 있다.
전희수 방짜유기장이 완성된 징을 망치로 두드리며 소리를 점검하고 있다.

“불을 피우는 작업은 매일 할 수가 없어서 새벽부터 쉼 없이 작업해요. 오늘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계속해야죠. 두 아들이 전수 중이라 든든하고 고맙지만 아직도 징을 망치로 세밀히 두드려 소리를 내는 최종 작업은 제가 혼자 합니다.”

 

완성된 징을 치자 삭막했던 작업장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징소리로 가득 찼다. 전희수 방짜유기장의 벌건 얼굴에 만족스러운 듯 환한 웃음이 퍼져 나갔다.


아산=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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