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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수상에 말레이시아가 들썩인 이유?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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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8 18:00:00 수정 : 2023-03-19 2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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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말레이시아 정착 화교집안 출신
태권도·중국무술 능숙한 배우·세계인
영국·홍콩·호주 “양자경은 우리의 자랑"
총리·어머니 “위대한 말레이시아 만들어”
청 혼란·영국 식민정부, 중국인 이주 부추겨

여배우의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주먹을 쥔 채 오른팔을 펼쳐 들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는 함께 축하의 자리를 지킨 무슬림 여성의 손을 꼭 잡은 채 “말레이시아 볼레”(말레이시아는 할 수 있다)를 외쳤다. 어머니의 곁에서 딸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는 이들의 표정도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인 이들은 종교와 민족적 배경은 다르지만, 말레이시아를 매개로 ‘파이팅’을 연신 외쳤다.

배우 양자경의 제9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는 대형 전광판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설치돼 있다. 쿠알라룸푸르=AP뉴시스

배우 양자경(량쯔충)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하자, 고국 말레이시아에서 이 소식을 생중계로 접한 어머니는 환호했다. 그 옆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지인들도 맘껏 기뻐했다.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생중계로 연결해 아시아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소식을 전한 언론매체들도 들뜬 모습이었다. 정작 차분한 모습은 수상자 양자경의 목소리에서 나왔다. 수상식 이후에도 양자경의 메시지는 연일 화제다. 

 

“어머니에게 상을”…말레이시아 볼레(할 수 있다)

 

“여성 여러분, 여러분의 황금기가 지났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양자경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로 영광을 차지했다. 이 영화는 여우주연상상 외에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에서 영예를 차지했다.

 

양자경은 시상식에서 “지금 저와 같은 모습으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이 희망의 불꽃이 되길, 가능성이 되길 바란다”며 “꿈을 꾸고, 실현된다는 걸 보여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자경은 이어 “상을 제 어머니께 바친다.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께 바친다”며 “역사가 만들어진 순간”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울림을 남겼다.

 

수상 소식을 갈망하던 쿠알라룸푸르에서 양자경의 어머니(자넷 여·84)는 환호했다. 어머니는 양자경의 수상 장면을 지켜본 뒤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딸은 참 열심히 노력해 왔다. 딸을 매우 사랑한다”며 “(양자경이) 말레이시아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고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볼레(말레이시아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양자경의 수상 당일 국가 차원의 축하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안와르 총리는 “이번 성과와 함께, 미셸의 훌륭하고 모범적인 경력이 우리 배우들에게 영감과 동기부여의 원천이 될 것”이라며 “국내 산업의 성장에도 킅 자극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제9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양자경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쿠알라룸푸르=AP뉴시스

당장 말레이시아 언론은 양자경의 성취를 계기로 말레이시아에 뿌리를 둔 영화인들의 이름을 소환했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감독이 된 제임스 완은 최신 영화 ‘인시디어스: 피어 더 다크’ 등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영화 ‘크레이이 리치 아시안’에서 열연한 헨리 골딩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영국 배우다. 골딩의 어머니는 보르네오 원주민 이반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말레이시아 당국이 자국의 영화에 대해 검열을 유지하면서 외국에서 이룬 성과는 반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호주 등 각국에서 환영 “양자경은 진정한 세계인”

 

말레이시아 밖에서도 환영일색이다. 양자경이 활동했거나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영국을 비롯해 한국, 홍콩, 호주 등 각국에서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소식이 다양하게 보도됐다. 가령 호주 언론은 1983년 미스 말레이시아에 뽑힌 양자경이 같은 해 호주 멜버른의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사실을 거론했다. 미인대회 우승을 배경으로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양자경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아시아계 배우로는 최초다. 여우주연상 후보로는 1936년 인도계 메를 오베론이 이름을 올렸지만 트로피를 받지는 못했다. 범위를 넓혀 유색인종까지 포함더라도 양자경은 사상 2번째 여우주연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유색인종으로는 2002년 영화 ‘몬스터볼’에서 열연한 핼리 배리 이후 처음이다. 

 

양자경의 거주지와 활동 무대는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다양했다. 무대를 넓게 활용한 세계인이었다. 먼저 이름. 한국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한자어 명칭 양자경(楊紫瓊)으로 자주 언급된다. 중국 이름은 량쯔충, 영어식 이름은 미셸 여(Michelle Yeoh)다. 예명은 미셸 칸(Michelle Khan)이다. 

배우 양자경의 어머니 자넷 여(가운데)가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딸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양자경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양자경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홍콩 영화를 거쳐 할리우드에서 유리천장을 깨뜨린 배우였기 때문이다. 1997년 영화 007 시리즈 ‘007 네버다이’에서 본드걸로 출연하고,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주인공(헨리 골딩 역할)의 어머니 역할을 소화하며 팬들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이번에 오스카의 트로피를 안긴 영화는 어쩌면 양자경과 주변 친구들의 인생을 어렴뿟하게 드러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이민자로 어렵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여성으로,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딸의 어머니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냈다. 

 

영화가 삶, 삶이 영화인 이주·다문화인

 

양자경은 1962년 말레이시아 페락주 이포(Ipoh)의 화교, 호키엔 집안에서 태어났다. 말레이시아가 말라야연방으로 영국으로 독립된 지 5년 되던 때였지만,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연방으로 체제를 바꾸기 3년 전이었다. 사실상 국가체제 형성과정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난 셈이다. 부친은 페락주에서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조부는 운송업체를 운영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중국에 뿌리를 뒀다. 양자경의 어머니도 어린 시절 미스 페락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배우 양자경의 어머니 자넷 여(가운데)와 지인들이 13일 주먹을 쥐고 배우 양자경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기뻐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FP연합뉴스

어린시절엔 중국어를 배우지 못했다. 양자경이 태어난 이포는 광둥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이 거주했지만, 학교 교육 등의 이유로 영어와 말레이어를 더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됐다. 성년이 된 이후 학창시절에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던 양자경은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공부했다. 4세부터 발레를 익혔다가, 15살 때인 1970년대 중반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영국왕립무영원에 들어가 발레를 다시 연습했지만, 부상으로 꿈을 접었다. 이후 인생은 영광과 곡절이 교차했다. 1983년 미스 말레이시아로 뽑힌 뒤, 홍콩 영화제작사 눈에 띄어 이듬해 홍콩 영화로 데뷔했다가 액션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홍콩 사업가와 결혼과 이혼, 은퇴 후 복귀 등 여느 세계적 배우와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멜로와 액션 영화 소화가 가능했던 양자경은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에서 그 능력을 여실히 증명했다. 양자경은 중국무술, 태권도, 가라테 등 동아시아 무술을 연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 화교…영어·말레이어·중국어 능통

 

양자경의 집안은 중국계 말레이시아다. 양자경이 영화 인생이 각광받은 것과 동시에 중국계 양자경의 위치는 동남아 화교에 대한 관심도 키우게 된다. 동남아의 화교 이주 역사 혹은 말레이시아의 인구 구성을 거칠게 살펴볼 수 있다. 

 

배우 양자경이 1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진행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연합뉴스

최신 말레이시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 3020만명 가운데 69.9%가 말레이계다. 나머지는 중국계와 인도계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에 중국과 인도계 미친 영향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나라다. 인도와 버마, 말레이반도에 영향력을 키우던 영국은 주요 민족의 이주에도 관여했는데, 말레이시아가 그런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국은 19세기 말 주석산업이 발달하자, 중국인을 말레이반도로 대거 이주시켰다. 

 

이보다 앞서 중국의 경우 명·청나라 교체기에 정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농민들을 중심으로 조국을 등지는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청나라가 안정세를 구가할 때는 인구가 1억3000만 명에서 3억명으로 늘고, 이에 따라 주변국과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샤 아잘란 말라야대학 교수는 “중국인들의 동남아 이주는 교역이 활발할 때는 물론, 혼란스러운 때도 또다른 이유로 이주가 이뤄졌다”며 “청나라 말의 혼란한 상황도 성인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동남아행 선박에 몸을 싣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교류가 활발한 시기였거나, 조국이 혼란한 상황이었거나 청나라를 떠난 이들은 열심히 생활했다”며 “무역상인은 물론, 경영자와 노동자로도 활동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지에서 결혼을 통해 바바·노냐(현지 출생 중국인), 쁘라나칸(중국계 혼혈아) 등으로 불리며 규모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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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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