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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수백번 공론의 장… 오존 60% 줄인 ‘환경 거버넌스’ [심층기획-‘환경 우등생’ 캘리포니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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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7 06:00:00 수정 : 2023-01-27 09: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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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소통의 정석

환경단체, 정부 협력·견제하는 ‘파트너’
취약계층 오염 노출 저감 등 참여 활발
당국·업체·주민 소통 통해 견해차 좁혀

문제 제시→ 지역데이터 바탕 정책 수립
“정부, 우리 이야기 듣고있다” 신뢰 쌓아
주민들, 변화 이끄는 ‘권력 이동’ 체감도

탄소중립 정책 1년새 ‘뚝딱’ 韓과 대조

“대기질 개선과 같은 계획은 15년 정도의 장기계획을 수립합니다. 단계별 규제 강화를 하거나 기준을 변경할 경우엔 3년 정도에 걸쳐 소통하고, 250여차례의 공론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주민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이 참여하고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해안 대기질관리지구(South Coast AQMD)에서 20년 가까이 근무 중인 이상미 박사는 대기모델링 전문가이지만, 소통에도 참여한다. 이 박사를 포함해 지난해 10월 만난 남부해안AQMD 관계자들은 “새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공청회를 시작한다”며 “모든 과정은 열려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화상회의를 이용하게 되면서 대중 참여가 오히려 더 원활해진 면이 있다”고 했다. 지리적 제약이 줄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와 항만을 통해 트럭과 선박이 수시로 오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부 오클랜드 전경. 이곳 주민들은 캘리포니아 주민 평균에 비해 디젤 공해에 90배나 더 노출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만 대기질관리지구(BAAQMD) 동영상 캡처

한국은 2050년까지 내다보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5년짜리 미세먼지 종합계획도 1년이면 뚝딱 만들어낸다. 2019년 지독한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졌던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그해 6월1일 정책참여단 출범식을 갖고 전국을 대상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상 8월에 영남권과 수도권, 호남·충청권에서 하루씩 토론회를 연 다음 9월에 이틀간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해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물론 전문가 의견 수렴은 그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지긴 하지만 그 역시 보통 6개월에서 1년을 넘지 않는다. 양쪽의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시민을 대표하는 환경단체들은 정책 당국이 강조하는 소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부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는 캘리포니아 환경보호청(CalEPA)과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가 있다. 주 정부를 상대하는 다수의 시민단체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방정부의 로비스트들이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이 캘리포니아 주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고 협력하며 정책에 영향을 준다.

 

청정대기연합(CCA)은 캘리포니아의 대기오염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중 하나다.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LA)를 중심으로 대기오염 문제를 다루던 환경단체들이 연합해 만들었다. LA에 본부가 있지만, 정책 담당자들은 캘리포니아 환경청과 CARB가 있는 새크라멘토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CCA의 정책 담당 빌 매거번도 주 환경 당국의 소통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환경청의 어떤 기관들보다도 CARB의 소통 노력이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와 정부가 파트너십을 갖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환경단체가 정부 정책의 촉진제가 될 때가 있다.

 

“CARB가 배출기준 강화나 무공해차량(ZEV·Zero Emission Vehicle) 교체 같은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때 시민단체 회원이 주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정책 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죠. 오늘 저녁에도 중요한 미팅이 있어요. 저도 참석하고요.”

 

우리 팀의 방문 당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ZEV 정책이 뜨거운 이슈였다. CCA는 운송업체가 의무적으로 내연기관차를 ZEV로 교체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는 수년 동안 CARB와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정책은 아마 내년(2023년) 초에 나올 거예요. 나는 그들(CARB)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ZEV 정책은 꾸준히 소통해온 거버넌스에 기반한다. 1990년 초기 대기오염 개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ZEV 시장 비율을 1998년 2%, 2001년 5%, 2003년 10%로 높이는 과감한 계획을 내걸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정책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는 테슬라나 전기차 전문 제조업체가 없었고,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의 전기차 생산량도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2011∼2019)는 2013년 ZEV 정책을 공표하고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CARB는 ZEV 확대 목표와 현실 가능성을 놓고 수십 수백번씩 업체들과 조율하며 한 단계씩 견해차를 좁혀 나갔다.

 

대형 트럭의 ZEV 전환은 대규모 운송업체일수록 규제 저항이 클 수 있어서 초기부터 대형 업체를 대상으로 규제 협상에 공을 들였다. 규제에 순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보조금 등 제도를 활용한 조건들을 만들어 갔다. 같은 운송업이라도 작은 회사와 큰 회사가 있기 마련인데, 큰 회사를 우선적으로 설득하고, 작은 회사들에는 약간의 유예를 허용하면서 뒤쫓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책

 

1960년대 LA는 연간 200일 이상 건강에 해로운 수준의 대기질에 시달렸다. 오존은 시간당 허용기준의 5배에 이르는 49ppm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오존 농도는 60% 이상 감축됐고, 주민들의 대기오염 노출도 90% 감소했다. 현재도 오존을 더 줄이기 위해 질소산화물 배출저감계획이 작동 중이며, 향후 15년간 83%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계획에도 여전히 더 많은 피해를 받는 지역이 있다. 대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 그렇다.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곳을 관통하고, 물류센터는 이들이 사는 곳 인근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도 취약계층에 더 많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력 부족으로 대기오염 피해를 알리기가 어렵고, 데이터와 증거를 수집할 자원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보다 더 시급한 빈곤과 주거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도 요인이다.

 

남부해안AQMD 관할인 LA항과 롱비치항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물량의 35%가 유입된다. 그래서 이 지역을 미국의 경제 엔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오염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캘리포니아 환경정의 인구 중 67%가 살고 있는 곳이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샌프란시스코만 대기질관리지구(BAAQMD)에도 항구와 고속도로, 물류센터로 인한 오염 피해를 보는 곳이 있다. 서부 오클랜드가 대표적인데, 이곳은 흑인과 라틴계 저소득층 주민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의 3대 항 중 하나인 오클랜드항이 있고, 고속도로가 지나는 터라 컨테이너 선박과 트럭이 무수히 오가며 디젤연료로 인한 공해로 신음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캘리포니아 주민 평균에 비해 디젤 공해에 90배나 더 노출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천식환자 발생률 또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캘리포니아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기오염 정책을 2017년부터 시행 중이다. AB617이라는 주 법에 의거한 커뮤니티 대기모니터링 계획(CAMP)과 커뮤니티 오염저감 프로그램(CERP)이 대표적이다. 그 전에는 정부가 대기질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이 높은 지역을 판단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지만, 현재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해 기준 17개 지역이 AB617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억7700만달러(약 2190억원)의 예산이 환경정의를 위해 투입됐고, 남부해안AQMD 관할 7개 커뮤니티를 포함해 샌프란시스코만 AQMD의 서부 오클랜드에서도 환경정의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 대기질관리지구(South Coast AQMD)가 지역사회 기반 대기질 해법을 모색하는 주 법 AB617을 도입한 2018년 2월과 4월, 남부해안AQMD 관계자들이 주민·전문가와 만난 날짜. 근무시간(빨간 원)과 저녁·주말(녹색 마름모)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만남이 이뤄졌다. 남부해안AQMD 제공

샌프란시스코만AQMD는 서부 오클랜드의 커뮤니티 운영위원회와 협력하면서 그 지역의 문제가 무엇인지, 원인과 주민 불편사항에 대해 먼저 듣고, 그들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회의를 정기적으로 진행 중이다. 크리스티나 추 샌프란시스코만AQMD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작은 마을 단위에서 취약가구의 오염 노출을 줄이는 건 AB617의 중요한 목적”이라며 “그 지역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주민과 함께 계획을 짠다”고 했다.

 

운영위 구성원은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며, 누구든 운영위원으로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전체 운영위원의 절반 이상이 주민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 각 지역별로 매월 개최되는 운영위에는 누구나 발언할 수 있다. 지역별로 참여하는 게 기본이지만, 개별 그룹이 회의를 요구하면 그 또한 열려 있다.

 

서부 오클랜드 커뮤니티 운영위는 이런 방식의 주민 참여로 가장 먼저 CERP를 작성한 지역 중 하나다. 2018∼2019년 밀도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나온 ‘공기의 주인은 우리: 서부 오클랜드 커뮤니티 행동계획’은 2019년 샌프란시스코만AQMD에서 공식 채택됐다.

 

지역 주민이 제시하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면서 주민들이 제시하는 지역 기반 데이터를 정책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민들은 환경 거버넌스를 통한 권력의 이동을 체험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와 환경단체 활동가들 역시 신뢰와 파트너십을 첫손에 꼽는다. 장기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협력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획됐나

 

<‘환경 우등생’ 캘리포니아를 가다>는 미 국무부 학술교류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2019년 미 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공모한 ‘굿 거버넌스’ 주제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미세먼지 기획이 선정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미국 현지 취재는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3년 만인 2022년 기후변화를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주제로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프로젝트를 함께한 임정근 대학ESG실천포럼 공동의장과 류희욱 숭실대 교수(화학공학),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과 세계일보 윤지로 기자가 필자로 참여한다. 주한 미대사관에 이번 프로젝트를 지원한 임 의장은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발전에 관한 전문가로, 특히 지속가능한 사회와 생태를 성취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류 교수는 현재 한국냄새환경학회장과 스마트안전보건환경융합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악취 및 대기오염 배출시설 저감기술을 30년 동안 연구해왔다. 박 소장은 환경정책을 전공하고,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환경정책, 지속가능발전, 환경거버넌스를 가르치고 있다.


새크라멘토·로스앤젤레스(LA)=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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