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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진동음이 혼곤한 잠을 깨웠다. 오전 10시, 타인들은 분주할 시각이지만 나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언제부턴가 낮과 밤이 바뀌면서 날이 훤히 밝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잠에 대한 강박을 없애면서 더 심해진 습관이었다. 오래전부터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는데, 그때마다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것 같아 그냥 오는 대로 두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때는 이틀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적도 있었다. 꼭 자야 한다는, 혹은 자겠다는 부담과 강박을 덜어내니까 불면의 시간도 견딜 만했다. 때로는 너무 오래 자지 못해 주의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걱정하지 않으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든 잠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휴대전화를 아예 무음으로 돌려놓고 있었지만 그날은 진동으로 맞춰져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그 진동음에 깜짝 놀라 깼던 것이다. 처음 드는 생각은 ‘아, 잠이 들었었구나’였다. 한데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찍힌 번호는 지역번호가 들어 있는 일반전화였다. 모르는 번호였다. 내 휴대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이 해킹당하고, 랜섬웨어 공격으로 모든 원고를 잃은 뒤로는 웬만해서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다. 더욱이 그 번호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무엇엔가 씐 듯 나는 서슴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기 하나로마트인데요, 카드를 두고 가셨어요. 카드 찾아가세요.” 카드라니.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하나로마트는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농협마트였고, 나는 주로 그곳을 이용하는 단골고객이었다. 요즘 들어 무언가를 자주 흘리고 다니거나 잃어버렸다. 마트에서 찾아가라는 이 카드 역시 분실신고한 뒤 얼마 전 새롭게 발급받은 카드였다. 어디 카드뿐일까. 택시에 재킷을 놓고 내리기도 하고, 물건 값을 치른 뒤 정작 물건을 놓고 온 경우도 많았다.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많았다. 어쨌거나 마트 직원은 카드의 주인을 찾느라 애를 썼을 테고, 또 카드 주인인 나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들의 수고가 고마웠다. 카드를 놓고 온 줄 몰랐던 나는 카드를 찾느라 애를 태우며 가방이나 옷을 뒤졌을 테고, 또 분실신고를 하고, 다시 카드 등록을 하고, 얼마나 번거로웠을까.

그런데, 정말,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고, 내 이름을 알았을까. 그동안 나는 머리만 숨긴 닭은 아니었을까. 아무도 나를 모를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마트의 회원가입을 하고, 배달주소를 남기고, 모든 결제를 카드로 해온 터라 내 정보는 그곳에 흘러넘쳤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일이다.

내가 한 모든 일은 흔적이 남고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 행동을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든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 모른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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