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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탈환 시간문제”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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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7 20:00:00 수정 : 2021-07-19 14: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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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해져 돌아온 탈레반

美, 9·11테러 보복으로 2001년 아프간 침공
나토와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 무너뜨려
탈레반, 게릴라 전술로 계속 미군 괴롭혀
전쟁에 지친 美·탈레반 2020년 2월 평화협정
美, 철군 돌입… 무기 버리고 도주하듯 철수도

현재 탈레반 8만5000명 추산… 결성 이래 최대
국토 장악 속도 배가… “85% 손에 넣었다”
美,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상황 주시”
미군 완전 철군 때까지 조용하게 지낼 듯
목표 이루어지면 강·온파 권력 다툼 공산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의 차만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 깃발을 든 지지자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미군 철수 후 세력을 확장 중인 탈레반은 최근 파키스탄으로 통하는 아프간 국경지대의 주요 거점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차만=AP연합뉴스

탈레반이 돌아왔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완전 철수 계획을 밝혔다. 20년간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이 목표를 달성했으므로 이제 그 병력을 집으로 데려올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사이 탈레반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하다. 특히 미군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면서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도 가속이 붙었다. 탈레반이 25년 전처럼 현 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거듭해서 미군 철수 입장을 밝혔다. 당초 언급했던 ‘9·11 테러 20주년인 오는 9월11일 이전’이라는 철군 완료 목표 시점도 다음달 31일로 앞당겼다. ‘그들의 나라를 지키는 건 그들 손에 달린 문제’이며 미국이 할 일은 끝났다는 것이다.

◆떠나기 바쁜 미국

9·11 테러 발생 20일 뒤인 2001년 10월1일,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콜린 파월은 파키스탄에 있는 그의 특사에게 ‘탈레반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전보를 보낸다. 전보의 내용은 크게 4가지. △알카에다가 또 다른 테러를 모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아프간에 있는 누구라도 미국과 동맹에 테러를 감행할 경우 결과는 파국에 이를 것 △알카에다 지도자를 넘겨주는 것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것 △탈레반 지도자들에 책임이 있으며 탈레반 정권의 모든 기반은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로부터 엿새 뒤 미국은 영국, 캐나다 그리고 다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전보에 나온 대로 미군과 동맹군은 아프간 탈레반 거점에 화력을 쏟아부었고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테러집단에 의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장면. 뉴시스

당시 탈레반 최고 지도자였던 무하마드 오마르와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은 용케 공격을 피해 달아났다. 파키스탄은 부인하는 사실이지만, 탈레반 지도자들은 파키스탄의 아프간 접경지인 퀘타로 넘어와 권토중래할 날을 기다리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비록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으나 탈레반은 게릴라 전술로 끊임없이 미군을 자극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루한 시간이 20년 가까이 흐르면서 미국도, 탈레반도 끝 모를 전쟁에 지쳐간다. 결국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에 돌입한다. 그 당시에도 아프간의 평화 정착은 멀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아프간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미국과 아프간에서 두 다리 뻗고 싶은 탈레반은 협정을 깨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철군을 서두르던 미국은 급기야 지난 2일 한밤에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야반도주하듯 철수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전쟁을 상징하는 최대 군사 거점이었다. 많을 땐 미군 10만명이 주둔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군용품 등 물품 350만개, 민간용 차량 수천대, 장갑차 수백대, 다수의 소형 무기 등을 버리고 아프간군에 알리지도 않은 채 떠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브리핑에서 “미군이 몇명 주둔하든 이제 아프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미군이 아프간에 간 것은 국가 건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빈 라덴 제거와 알카에다 무력화였으며 이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프간 치안 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철수를 서두르는 건 결국 외교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다. 바이든 역시 “우리는 20년 전 정책에 묶여 있을 여유가 없다. 미국은 중국과 다른 국가들과의 새로운 경쟁에 대응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온 것도, 떠나는 것도 결국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백악관 각의 중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는 오바마 당시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아프간 주재 대사관들은 치안을 우려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주아프간 호주 대사관은 지난달 말 제3국으로 철수했고, 인도도 영사관 인력을 잠정 철수시켰다. 한국 외교부도 아프간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에게 떠날 것을 요청했다.

 

◆내보내기 바쁜 탈레반

2001년 미군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탈레반의 규모는 약 4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이후 1만명 남짓까지 줄었다가 2010년 이후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는 5만5000∼8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탈레반 결성 이래 최대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는 속도 역시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발표 이후 배 가까이 빨라졌다. 현재 국토의 85%를 손에 넣었다는 게 탈레반 측 주장이다. 이에 미국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 반응만 보이고 있다.

애초에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에 끼지도 못한 아프간 정부는 “전략상 후퇴했을 뿐 조만간 다시 정부가 되찾아올 것이다.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은 전술적 가치도 별로 없는 곳”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탈레반이 장악한 국경 지대는 광물이 풍부해 무장단체의 금고를 채워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그들이 어떤 정치력을 보일지에 주목하고 있다.

탈레반이 1996년 부르하누딘 라바니 아프간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을 때 아프간 여론은 탈레반에 호의적이었다. 라바니 정부의 주축인 무자헤딘(반소련 게릴라 무장집단) 내부의 권력투쟁과 강간, 약탈, 방화에 지친 아프간 국민들은 탈레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한술 더 떴다. 텔레비전과 음악, 영화를 금지했으며 10세 이상 소녀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다. 남성은 턱수염, 여성은 부르카(눈만 빼고 온몸을 덮는 이슬람 복식)가 의무화됐다. 범죄자는 공개 처형하고 사지를 절단했다.

아직 미국이 아프간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은 최대한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샤하르자드 아크바르 아프간 독립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포린폴리시에 “그들(탈레반)은 최근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멋진 영어 성명을 발표했다”며 “물론 그것이 실행되는 것을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 최근까지도 탈레반은 암살을 서슴지 않고 있다. 기자나 판사, 평화운동가와 권력층 여성이 주요 대상이다.

윌슨센터의 남아시아 전문가 마이클 쿠겔만은 “탈레반에서 외교 담당 고위 지도부와 전장 지휘관의 메시지가 극명하게 갈린다”고 분석했다. 군 지휘관들은 평화회담을 포기해서라도 아프간을 정복하고자 하는 반면, 외교 담당 지도부는 탈레반이 정상적인 파트너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사회 평화회담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미군과 나토를 아프간 영토에서 내보내자’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 탈레반 내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공공의 적’이 떠나고 나면 두 세력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아프간 국가안보회의의 한 관계자는 “탈레반은 아프간이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그런 논의를 하다 보면 탈레반의 분열이 전면에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논의를 미뤄왔고) 이 점이 탈레반의 중요한 한계”라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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