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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얼간이’들이 행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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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7 01:05:29 수정 : 2017-04-11 17: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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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갓 전역하고 스마트폰을 처음 손에 쥐었던 2013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신저에는 유독 자주 등장하는 대화명이 있었다. ‘All is well’(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말의 인도식 영어 발음인 ‘알 이즈 웰’이다. 이는 2009년 개봉한 발리우드 영화 ‘세 얼간이’에 등장하는 대사다. 문장 자체가 가진 긍정의 힘 덕분일까. 당시 SNS는 물론이고 여학우들의 다이어리 겉표지에도 ‘알 이즈 웰’은 주문처럼 번졌다.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쫓아온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세 주인공은 천재들만 간다는 일류 공대에 입학하지만 성공이 보장된 공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꿈을 좇는다. 이 때문에 ‘세 얼간이’라 불리며 교내 사고뭉치로 악명을 떨치지만 그들은 “알 이즈 웰”을 외치며 자신의 재능을 따라간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 대사는 자석처럼 꿈에 이끌리면서도 현실의 벽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내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었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최근 구직 활동에 여념이 없던 Y가 술잔을 기울이며 느닷없는 고백했다. 한때 Y는 래퍼로 데뷔를 꿈꿀 만큼 음악적 재능이 있었는데 ‘음악’을 주 콘텐츠로 삼아 인터넷방송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택한 ‘낯선 길’에 자동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이나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마음을 굳혔다는 말에 무언의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는 번듯한 대학을 나온 Y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현대사회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에 편입되는 것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인기가 십수년째 식을 줄 모르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17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은 역대 최다인 22만8368명이 지원해 46.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한 청년들의 선망 대상이었던 ‘스타트업’ 열풍도 사그라지는 추세다. 정부의 스타트업 기업 지원 정책이 미비한 탓도 있겠지만 경제 불황으로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측면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세태에서 학교에서 지겹도록 배운 직업의 다양성 존중이라는 가치는 실현 요원한 것이 되고 말았다. 대신 남들이 숱하게 걸어간 발자국이 남아있는 곳만이 여전히 붐비며 청춘들을 홀리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음악가, 혹은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꿨던 잠재적 ‘천재’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지식을 억지로 머리에 쑤셔 넣으며 젊음을 소비한다. 불확실성이 실패와 맞닿아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도박판에서도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하겠는가.

오는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마음에 훈풍이 불고 있다. 청춘의 끝 무렵에 서 있는 20대 후반 유권자로서 당부의 말을 남긴다. 대선 주자들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단순한 취업률 제고가 아니라 청춘들이 택한 ‘낯선 길’에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흔해 빠진 화이트칼라로 남기엔 청춘이 너무 푸르다. 꿈을 좇는 ‘얼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은 아니기를 바라본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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