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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 떠도는 '수원 노숙소녀'…미제사건에 이름도 못 올려

입력 : 2016-08-25 08:06:40 수정 : 2016-08-25 08: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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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송치사건으로 분류…검찰 "무죄 났을 뿐 미제 아니야"
상해치사 공소시효 만료…범인 나타나도 처벌 어려울 듯
9년 전 경기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근을 돌며 노숙하던 10대 소녀가 모진 폭행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른바 '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이다.

노숙자·가출청소년 등 6명이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모두 무죄를 확정받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지만 수사기관의 재수사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검찰에 이미 넘긴 사건이라는 이유로 미제사건으로 분류조차 하지 않고 있고, 검찰은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을 뿐 미제사건으로 볼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 사이 이 사건 주요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는 만료됐고 소녀의 넋은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다.

◇ 고등학교 화단서 발견된 소녀…범인은

2007년 5월 17일 새벽 고등학교 화단에서 김모(당시 15)양이 모진 폭행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김양은 수원역 등지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정신병력자 정모(당시 28)씨를 주범, 정신지체장애 2급을 앓는 강모(당시 29)씨를 공범으로 체포해 자백을 받아 구속했다.

정씨는 같은 해 8월 1심에서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 12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강씨는 벌금형을 받았다.

검찰은 이듬해 정씨와 강씨는 모두 공범이고 주범은 최모(당시 18)군 등 5명의 가출청소년으로 이들이 범행을 자백했다며 형사 미성년자 1명을 제외한 4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최군 등은 사건 당일 오전 2시께 수원역에서 김양이 일행의 돈 2만원을 훔쳐갔다고 여기고 추궁하다가 정씨 등과 함께 김양을 고등학교로 끌고 가 1시간 동안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수원지검은 이례적으로 폭력조직이나 마약사범 수사를 맡는 인지 부서인 마약·조직범죄수사부(현 강력부)에 이 사건을 맡겼고 최군 등을 검거한 사실을 수사 성과로 널리 알렸다.

◇ 피고인 전원 '무죄'…진범은 어디에

최군 등 가출청소년들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초동수사가 미흡해 물증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지만, 범행을 인정하는 이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최군에게 징역 4년, 나머지 3명에게 단기 2년·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김양이 발견된 고교 정문에 설치된 CCTV에 최군 등의 모습이 전혀 찍혀있지 않고 범행 현장에 이들의 지문을 비롯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의심,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대법원이 2010년 "최군 등은 수사과정에서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검사가 자백하면 선처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해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확정하면서 최군 등은 자유의 몸이 됐다.

이들보다 앞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노숙자 정씨도 "수사기관의 회유에 허위로 자백했다"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 만기출소한 뒤 2012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른 노숙자 강씨 역시 2013년 10월 열린 재심을 통해 이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던 이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무죄를 인정받았다.

6년여의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정신병력자, 정신지체장애인, 가출청소년 등을 수사기관이 강압적으로 수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은 잘못된 수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들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김양을 끌고 갔다던 길에 설치된 14대의 CCTV에도 이들의 모습이 담기지 않았고 주민들이 비명 등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김양 사인인 외상성 경막하출혈은 폭행 이후 사망까지 수 시간이 걸려 범행 시간과 맞지 않는 등 이들을 범인으로 볼 수 없는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 범인 없지만 미제사건으로 분류 안돼

결국, 범인으로 붙잡힌 6명이 전부 무죄로 풀려났지만, 수사기관은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보지 않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일선 경찰서에서 맡은 사건 가운데 발생 이후 5년이 지나도 수사에 진척이 없는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분류하고 전담수사팀으로 가져와 수사한다.

경찰은 이 사건이 정씨 등 노숙자 2명을 검찰에 넘겨 사건처리를 완료한 '송치사건'으로 분류됐다는 이유로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의 사건 목록에서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2009년 6월 전남 광양의 한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광양 주차장 살인사건'의 경우 이 사건처럼 피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검찰에 수사·재판 기록을 요청, 넘겨받아 올해 2월 재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법원이 범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일반 미제사건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수사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범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실체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기소했던 사람들을 다시 수사할 수 없고 그 외 새로운 범인이 있다고는 판단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재수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덧붙였다.

◇ 재수사 없이 공소시효 만료…"모두가 억울한 사건"

검찰 주장과 달리 진범이 따로 있고 당장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제 그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김양은 더욱 억울하다.

검찰이 정씨 등 노숙자들을 법정에 세울 때 적용한 혐의는 살인죄이지만 1심 재판부는 흉기나 둔기를 사용한 흔적이 없고, 김양의 사인을 근거로 김양에게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의 외력이 가해지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이 사건 발생 당시 상해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어서 이미 2014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따라서 진범이 나타난다면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하는데 김양의 사인 등이 바뀌지 않는 한 10년이 지난 현재 살인죄가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

박준영 변호인은 "결국 이 사건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김양을 비롯해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까지 한 노숙자·가출청소년들 등 모두가 억울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고 한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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