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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망 구멍 노린 사기 행각… 단서 규정 한 줄에 피해자 눈물 [S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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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27 23:35:57 수정 : 2024-04-28 09: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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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피싱 범죄, 못 따라가는 法

VIP 투자정보 주겠단 말에 속은 20대
통신사기피해환급 특별법 적용 안 돼
계좌 정지 늦어져 1억여원 모두 날려

‘재화 공급·서비스 제공 등 가장한 행위’
현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안 봐
사기 이용 계좌 신속한 지급정지 불가

가압류 신청 땐 인용 최장 두 달 걸려
사기범들 출금하고 종적 감추기 일쑤
법조계 “피해 최소화하려면 法 바꿔야”

단서 규정 탓 한정적 유형만 적용 대상
피싱 범죄 피해자 99%는 보호 못 받아

20대 박상우(가명)씨는 지난해 11월 ‘A투자사’ 직원이란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직원은 “2년 전 코인 리딩방 가입비 150만원을 환불해주고 투자 정보가 오가는 ‘VIP 정보방’ 입장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은 박씨는 이 방에 입장한 뒤 코인을 구매하기 위해 ‘B비트’라는 코인거래소에 입금 신청을 한 뒤 안내받은 시중 은행 계좌에 총 1억12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B비트’라는 코인거래소는 입금 후 수익이 나더라도 출금이 되지 않는 허위 거래소였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같은 해 12월19일 사기에 이용된 은행 계좌를 가압류 신청했다. 가압류 신청은 약 2주 뒤인 이듬해 1월3일에서야 인용됐다. 이때는 이미 사기범들이 계좌에서 돈을 모두 인출한 상태로, 실제 가압류된 금액은 0원이었다. 박씨는 결국 피해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보호 못 받는 피싱범죄

만약 이 사건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해당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분류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통신사기환급법이 규정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는 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나 사기이용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할 수 있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즉시 은행 등 금융회사에 전화해 “해당 계좌가 사기에 이용됐으니 출금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면 금융회사는 이 계좌의 이체, 송금 또는 출금을 지연시키거나 일시 정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경우 사기범이 피해금을 인출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박씨의 사례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통신금융사기는 전기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자금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자금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단 박씨의 사례처럼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된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피싱범죄 피해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유형의 피싱범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나 비상장 주식에 투자를 하면 큰 수익을 보게 해주겠다고 속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지난 4일 “통신사기환급법은 통신 사기의 주요한 유형인 재화 공급을 가장하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이 경우 사기 이용 계좌 가압류를 신청해야 한다”며 “가압류는 짧으면 2주, 길면 두 달이 걸리고 신청이 인용되더라도 사기범들이 돈을 출금하고 종적을 감춰버리면 피해 회복은 매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이 단서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2021년 5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금융 사기 수법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신속하게 법을 개정해 피해방지 및 구제를 위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 법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범죄 조직들의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고, 당하는 사람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늘고 있는 만큼 21대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킹·증권범죄 이용 계좌도 신속 동결해야

피싱범죄뿐 아니라 해킹범죄나 시세조종 등 증권범죄에 이용된 계좌도 즉시 동결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사기 범죄에 한정돼 있다.

그런데 최근 타인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복제해 개인정보나 가상화폐를 빼돌리는 신종 해킹인 ‘심 스와핑(SIM Swapping)’ 범죄가 늘어나면서 피해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심 스와핑이란 흔히 유심칩이라 불리는 가입자 식별 모듈(SIM) 카드를 몰래 복제해 은행이나 가상화폐거래소 계좌에 보관된 금융자산을 훔치는 수법이다.

정보보호 사건을 전문으로 맡는 한 변호사는 “해킹범죄는 ‘타인을 기망하여’라는 사기 범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들처럼 신속한 계좌 동결이 불가능하다”며 “해킹범죄에 이용된 금융 계좌나 가상자산 지갑 등도 가압류 처분 같은 보전조치 없이 동결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야 추가 피해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 계좌를 신속 동결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조사 과정 중 불공정거래 혐의 계좌를 발견하면 이 계좌의 신규 금융 거래나 자산 처분을 금지해 불법적으로 얻은 이익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을 통하지 않고 금융당국 차원에서 계좌를 동결하려면 역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방민우 새변 공동대표 “피해금 회복 가능성, ‘환급법’ 적용 여부에 달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보호를 받는 피싱 범죄 피해자들은 변호사도 필요 없다. 평소 자기가 사용하던 금융기관에 전화 한 통만 하면 2∼3분 내에 사기에 이용된 계좌를 정지할 수 있다. 피싱 범죄 피해가 근본적으로 예방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 공동대표인 방민우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싱 범죄 피해금의 회복 가능성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방 변호사를 찾는 피싱 범죄 피해자의 99%는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법이 ‘전기통신금융사기’ 대상에서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 공동대표인 방민우 변호사(법무법인 한일)가 26일 가진 인터뷰에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 변호사는 “사기는 타인의 기망행위에 속아서 재산을 처분해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인데 자본주의 시대인 현시대에는 어떤 이익을 주겠다는 기망행위가 대부분”이라며 “이 단서규정이 있으면 자녀가 납치됐다거나 본인의 계좌가 해킹됐다고 속이는 등 극히 한정적인 유형의 피싱 범죄만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싱사기를 치는 범죄자들도 이런 법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기망행위에 일부러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방 변호사는 ‘피싱 범죄’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싱 범죄와 일반 사기 범죄의 차이점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인적 정보를 특정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사기죄는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가해자를 특정하기 비교적 용이하다. 반면 피싱 범죄는 대부분 메신저 등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휴대전화 번호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일단 피해금을 이체하면 가해자를 검거해 피해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뤄지고 전기통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가해자 특정이나 신속한 검거가 힘든 범죄를 피싱 범죄로 정의하고,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방 변호사의 주장이다.

 

방 변호사는 “당장 제 주변에도 피싱 범죄로 3억여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을 정도로 피싱 범죄는 일상적인 범죄”라며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제외한다’는 단서규정만 없어도 피해를 회복할 가능성이 몇백 배는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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