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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그때 그 골목길, 오늘의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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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6 23:17:55 수정 : 2022-09-26 23: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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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하고 정취 있는 골목길
비효율 낙인에 철거·재개발
넓은 길 고층건물 세웠지만
도시 다양성 갈수록 사라져

유럽을 관광하다 보면 고도(古都)일수록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 많다. 옛날 성주들이 군웅할거 하던 시절, 적의 침입로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성 주변을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로 만든 것이다. 막부 정치를 하던 일본의 성 주변도 비슷하다. 이 꼬불꼬불한 골목길촌을 조카마치(城下町)라고 한다.

서울의 강북도 얼마 전까지는 골목길 도시였다. 구멍가게, 전봇대, 낙서 등 잡다한 것들이 술 취한 주민들의 길잡이였던 골목길.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예스러운 골목길은 시적이고 정취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술래잡기를 하고 공차기를 하며 자랐다. 그래서 좁은 골목길은 항상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이건영 전 국토연구원장·소설가

도심지 무교동이나 청진동의 피맛길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국숫집이나 선술집들이 즐비했다. 피맛길이란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이 말 탄 고관들의 눈길을 피해 다니던 골목길이었다. 그늘지고 지저분하지만 친숙한 분위기였다.

젊은 시절에는 명동 분위기에 휩쓸렸다. 왜 명동이 인기 있는 공간이었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에 극장, 양장점, 술집, 음식점, 악기점 등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운 좋으면 버스킹도 즐길 수 있고, 언덕바지에는 성당이 버티고 있어 죄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기도 쉬웠다. 온갖 도시적 요소들이 모여 있어 서로가 이곳에서 만나고 어울렸다. 종로, 을지로, 남대문로 등 큰길에서 비켜선 이곳은 도시의 골목길이고 오아시스였다. 최근에는 대학로, 홍대 주변, 경리단길 등 나름 분위기 있는 거리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일본 오사카에 가면, 정갈한 목조주택과 노포(老舖)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가라호리(空堀)나 나카자키초(中崎町) 같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것이 관광의 주요 코스다. 5년 후, 10년 후에 가도 그때 그 점포, 그때 그 건물 그대로다.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가 찾아다니는 맛집들도 이런 골목쟁이에 있다.

개발연대 이전 서울은 몇몇 큰길을 빼곤 거의가 골목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신도시인 강남 지역이 격자형으로 개발되고, 강북에도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도시 구조가 바뀌었다. 그래서 피맛길을 비롯하여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던 골목길은 많이 없어졌다. 가로가 넓어지고 주변이 고층빌딩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같은 기하학적 능률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골목길 타령이라니. 낡은 것이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분명 비효율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낡은 동네나 노후한 건물을 보면 철거하거나 재건축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하꼬방, 판잣집, 토막집, 달동네 등으로 불리던 불량주택들과 사이사이 골목길이 간헐적으로 철거되고 주민들은 외곽으로 이주되었다. 낡은 골목길들이 불도저에 밀리고 큰길과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마포, 왕십리, 은평, 길음 지역의 스카이라인이 산뜻해졌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면서 상당수의 뉴타운사업은 취소되었다. 대신 주민들의 낡은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거리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보존 회복시킨다며 ‘서울형 골목길 재생’이란 사업을 추진하였다. 연남동, 용답동, 창신동 등지의 골목길에 보도블록이 깔리고, 화단이 조성되고, 예쁜 벽화가 그려지고 계단 손잡이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골목길은 옛 추억 거리일 뿐, ‘오늘’로 끌어오지는 못하였다.

요즘 도심지의 광로(廣路)와 고층빌딩 숲을 걸으면서 인간적 왜소감으로 위축된 기분을 느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거리에 늘어선 건축물과 가로는 애초부터 인간적 스케일로 만들어졌다. 인간적 스케일이란 인간이 걸으면서 적당한 앙각(仰角)으로 도시 경관을 관찰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거리는 양편으로 늘어선 상점의 쇼윈도가 우리의 시선을 끌던 거리였다. 여기 도시적 분위기가 일렁거렸다. 한가롭게 또는 바쁘게 흐르는 인파 속에서 도시의 삶과 율동을 느끼곤 했다.

아직도 많은 건물과 아파트단지들이 담장을 두르고 있다. 담장부터 헐자. 어느 건축가는 도심지 건물의 1층을 모두 보행자에게 할애하여 필로티로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렇다면 좁은 보도를 따라 흐르던 보행자의 동선이 넓게 확산될 것이고 걷는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유럽의 카페는 길가에 테라스식으로 되어 보행과 휴식이 어울려 있는 데 비해 우리의 보행공간은 노상주차한 자동차들도 가득하다.

그동안 도로만 넓어진 만큼 가구(블록)도 커졌다. 아파트단지들의 규모가 이제는 매머드화하였다. 둔촌동, 가락동, 대치동 등 재건축단지들은 보통 1만 세대가 넘으니 도시 하나의 규모다. 이 도시 내에 도로는 없고 ‘자기들만의 도로’만 있다.

골목길이었던 곳이 단지 부지가 되었다. 광로에 둘러싸인 대형 블록화로, 작은 길은 없어지고 큰길은 더 넓어졌다. 거대 블록을 작은 단지로 나누어 골목길도 만들고 동네 상가와 카페도 만들어야 도시적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을까? 뉴욕의 파수꾼이었던 도시사회학자 제인 제이컵스는 ‘작은 블록’과 ‘낡은 건물’이 도시의 다양성의 요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우리의 도시 거리가 더 삭막해졌다. 그래서 거리를 걷는 발걸음이 더 피곤하다.


이건영 전 국토연구원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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