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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연표서 ‘고구려·발해’만 쏙 빼… 진화하는 ‘동북공정’ [뉴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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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4 18:00:00 수정 : 2022-09-24 17: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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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노골적 ‘문화침탈’ 가속

한·중 특별전시회서 일방적 자료 편집
韓 강력 항의에 수정 대신 철거로 대응
中, 오랜기간 동안 일방적 세계관 고수

고구려 연구 길어지며 세대교체 추세
젊은층 ‘동북공정식 인식’ 이견 확산
동아시아 관점 국제관계 해석 움직임

최근 발해사 연구방향 中정책과 밀접
‘일대일로’와 연결짓는 경향 두드러져
“한·중 발해사 연구 격차 심화 우려 커”

中, 고구려사 연구 양적 헤게모니 앞서
새 해석의 틀, 이론 제시해야 대응 가능
동북공정 집착 말고 새 대응책 내놔야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국가박물관이 한·중 수교 30주년 등을 맞아 특별전시회를 진행하며 한국 고대사 소개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 관련 내용을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국보급 유물과 자료를 받아 전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자료를 편집한 것이다. 한국 측의 강력한 항의에 결국 중국은 해당 연표를 수정하는 대신 철거를 결정했다. 한국의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최근 주목하지 않았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다.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중국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이 주도해 해당 지역의 역사, 문화, 지리 등에 대해 연구한 사업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귀속시킨 동북공정의 실체가 2003년 국내에 처음 알려지면서 한국 학계와 국민들은 큰 충격이 빠졌다.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은 2007년 마무리됐지만 연구 지원 기간이 끝난 것일 뿐, 중국의 동북 3성에 대한 연구와 한국사 왜곡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중국 동북지역부터 아프리카까지 ‘하나의 길’로 잇는 경제벨트) 정책과 맞물려 역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중심이 되는 표준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6월 동북공정 시작 20년을 맞아 이를 평가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를 통해 연표 사건으로 드러난 중국의 고구려·발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길금-한중일 고대 청동기전’ 전시관의 한쪽 벽이 연표를 철거한 뒤 텅 비어있는 모습. 중국 국가박물관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면서 일방적으로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 관련 내용을 삭제해 논란을 일으켰다. 베이징=연합뉴스

◆신진학자 중심 주제·해석 다양화된 고구려 연구

국내에선 동북공정 시기를 크게 공식 연구기간인 2007년까지와 그 이후인 ‘포스트 동북공정’으로 나눈다. 2007년까지 진행된 연구에서 중국은 핵심 논리로 ‘번속이론’을 내세웠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이 모두 한족의 번속(藩屬·변방의 속국)이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다.

이후로도 이러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 학계는 오랜 기간 중국 중심의 일원적·일방적 세계관을 고수하며 중국에 대한 고구려의 종속성을 강조하고, 고구려가 중원왕조의 지방정권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방식의 연구 방법을 택했다. 또 한·일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의 가치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오로지 중국 사료만을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연구기간이 길어지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연구기관과 연구자의 증가로 다양한 시각과 연구 방법, 자료 해석이 적용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권순홍 대구대학교 연구교수는 2018년 시작된 ‘고구려발해연구청년학자공작방’을 주목했다. 이는 장춘사범대학 동북아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연구소가 지원하는 학술회의로 중국 내 고구려·발해를 연구하는 청년학자들의 학술 토론장이다. 2018년 열린 1회에는 10개 대학 3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데 이어 지난해 열린 3회에는 30여개 대학 120여명의 연구자로 늘었다.

 

해당 회의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논의도 눈에 띈다. 지금까지 동북공정 역사인식의 핵심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중국 사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관련 기록을 종번관계로 확대해석하고 고구려의 종속성과 귀속성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광개토대왕비 등 당대 금석문, 다른 사료와의 비교 등을 통해 삼국사기가 비교적 정확하다고 평가하거나, 삼국사기나 일본서기 등을 핵심 자료로 두고 당시의 정세를 중국 중심의 일방적 세계관이 아닌 동아시아 관점의 국제관계로 해석하는 연구도 나타났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기존 ‘동북공정식 역사인식’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나오면서 논의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중국의 역사인식에 대한 큰 틀이 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 6월 17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중국의 역사 정책과 동북아 역사문제’를 주제로 비공개 학술회의가 열린 모습. 연구자들은 중국의 동북공정 사업 시작 20년을 맞아 중국의 역사 인식을 점검하고 연구 변화 양상을 검토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발해는 말갈국가” 주장… 연구지원 늘려 국가 정책 뒷받침

중국은 발해를 ‘중국 고대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주체가 되어 세운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1930년 전후에 정립됐다. 1920년대까지 중국 학계는 일반적으로 동북지역 주요 민족계통을 숙신족(읍루·말갈·여진), 부여족(백제·고구려), 몽고족(선비·거란·몽고)으로 나눴고 한족과는 연결짓지 않았다. 그런데 1931년 만주사변 전후 일제가 만주와 몽골의 역사를 중국사에서 분리하며 만주 침략을 정당화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 학계가 동북 지역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는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대만대 총장을 역임한 역사학자인 푸스녠은 1932년 편찬한 ‘동북사강’ 서문에서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상 만몽(만주·몽골)은 중국영토가 아니다’라는 설을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며 “3000년 동안 동북지역과 그 민족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이었고, 중국 황제의 통치하에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의 발해 연구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성립 뒤 크게 퇴보했다. 유물사관에 위배되는 데다 북한과의 우호관계 속에서 한국사와 관련된 고대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가 금기시된 탓이었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발해 유적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중국에서는 이런 연구는 중단됐다. 그 사이 북한 연구자들은 줄줄이 발해 연구 성과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발해는 주민, 영역, 주권 등 모든 방면에서 고구려의 계승자”라고 강조했다.

문화대학명이 끝난 뒤 북한의 발해사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중국 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중국 학계의 발해사 연구는 줄기차게 발해의 고구려의 계승성을 부정하고 당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1980년대부터 중국 학계의 발해사 연구를 주도한 웨이궈충이 2019년 발간한 ‘발해사’를 보면 “발해는 중국 소수민족 말갈족이 세운 국가로 초기 국호가 말갈이었으며 당의 발해군왕 책봉 이후 정식으로 중국의 지방정권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기조가 굳어진 가운데 최근 3년간 중국의 발해사 연구 방향은 국가 정책과 연결되면서 진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우수전통문화 육성 정책을 통해 소수민족 전통문화를 강조하면서 만주족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앙가’와 자수문화 등을 발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연구가 나왔다. 또 각종 발해의 역사문화유산을 ‘일대일로’ 전략 및 관광 역사문화유산 결합 정책과 연결짓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고려와 연구 지원이 중국과 한국의 발해사 연구 격차를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한국고대역사연표. 발해와 고구려 부분이 빠져있다. 웨이보 캡처

◆한국, 中의 신경향 대응해 관련 연구 확장해야

이렇듯 동북 3성지역에 대한 연구는 동북공정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고구려를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고, 발해가 당왕조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강화했다. 최근엔 중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역사를 연구하고 이용하는 경향도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권 교수는 “고구려사 연구의 양적 헤게모니는 이미 중국학계의 것이다. 중국 학계는 다양한 주제를 발굴 중이고 환경사 등 주제는 오히려 한국 학계보다 앞서 있다”면서 “결국 한국 학계가 고구려 연구의 질적 헤게모니를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의식에 의한 새로운 해석의 틀, 이론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발해사 연구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권 연구위원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선 양국의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발해 유적이 있는 북한과의 학술공조,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학술교류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의 동북3성 연구가 크게 확장된 만큼 한국 학계와 언론이 ‘동북공정’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자민족 중심주의 패권주의식 역사관은 이미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는데, 지금도 동북공정이란 용어로 규탄을 계속하면 일부분만 보는 것”이라며 “동북공정은 과거에 보내고 앞으로 중국의 자의적 역사만들기, 신중화주의적 역사인식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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